<데스크라인>언제까지 흘러간 물레방앗간 소리를 틀고 있을 것인가

원철린

무역수지 동향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4월 들어 일평균 수입액이 6억2400만달러로 지난 96년 4월 이후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출증가세는 둔화되고 있는 데 반해 수입증가세가 급증하면서 지난 4월 무역수지 흑자규모는 2억2500만달러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일시적이라지만 수출입의 흑자규모가 이렇게 줄면서 올 무역수지 흑자목표 120억달러 달성에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수출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수입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세계최고의 메모리반도체 수출국이라는 자랑을 일삼고 있지만 두껑을 열어 보면 자랑할 수만도 없는 형편이다. 1·4분기 동안 메모리반도체의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6.9% 증가한 11억8400만달러에 이르렀다. 하지만 비메모리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수입액이 지난해보다 32.9% 증가한 10억7400만달러에 달해 마이크로프로세서 주문형반도체 등에서 여전히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수출주력상품인 전기전자제품의 경우 컴퓨터, 정보통신산업의 생산호조로 1·4분기 수입액이 무려 107억2000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 49.6%나 늘어났다. 부품국산화율을 보면 이동통신단말기는 47%, 컴퓨터는 51%, 디지털카메라 45% 등 50% 안팎에 머물러 있다. 부품국산화율이 낮기 때문에 수출을 하면 할수록 부품·소재수입은 그만큼 증가하고 있다.

우리 첨단제품은 겉만 번지르르하지 속은 텅비어 있는 셈이다. 따라서 최근 들어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면서 정부도 이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자신문의 전신인 전자시보의 90년 5월 18일자를 보면 「산업자원부의 전신인 상공부가 부품소재국산화를 위해 국산화개발품목을 307개 지정」이라는 큼직한 제목이 뽑혀 있다. 지금에 와서야 컬러TV 부품국산화율이 95%, 비디오 90%, 전자레인지 99% 등으로 높아져 있지만 그당시만해도 이들 제품의 국산화율은 지금의 이동통신단말기처럼 형편없던 시절이었다. 정부는 수입품목이 높은 부품·소재들을 중심으로 국산화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항상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급급해 부품·소재산업은 걸음마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명실상부한 부품·소재산업의 국산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해가 바뀔 때마다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말들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구조조적인 문제는 외국경영평론가로부터도 한국경제가 살아날 수 없는 이유로 자주 지적되고 있다.

경제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 씨는 『한국은 한동안 무역에서 흑자를 냈으나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그 이유로 한국은 기간부품이 없어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더 심한 독설을 쏟아 냈다. 한국재벌은 입만 열면 「우리회사는 세계최고의 TV를 만들고 있다」는 따위의 자랑을 늘어 놓지만 핵심부품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들여오고, 특히 제품이 가볍고 얇고 짧고 작아질수록 한국은 만들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에게 뼈아픈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오마에 겐이치 씨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부품·소재산업의 취약점은 우리 전자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전자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지금과 같은 틀을 유지해서는 안될 듯 싶다. 이제 부품·소재산업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할 때다.

우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재벌개혁에 맞춰 재벌가(財閥家)의 부품·소재산업에 대한 전면적인 손질이 필요한 때다. 실제로 재벌 친인척들이 기술력도 없이 돈될만한 부품·소재기업들을 꿰차고 있다. 이렇다보니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두번째는 부품·소재분야의 전문업체를 육성하는 데 정책의 힘이 실려야 한다. 30∼40년된 부품업체의 매출규모도 여전히 1000억∼2000억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규모로는 글로벌한 경쟁을 벌일 수 없다. 이제 인터넷의 등장으로 기업간(B2B)전자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부품업체들의 경쟁은 치열해질 전망이다. 따라서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부품·소재업체들의 덩치를 키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

세번째는 산업기술의 로드맵을 작성, 미래를 준비하면서 기술개발에 나서야 한다. 특히 지금의 나눠먹기식 기술개발에서 탈피하고 연구개발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젊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기술개발과제를 선정·지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처간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부품·소재분야의 발전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처간 불협화음으로 우리의 힘을 낭비하기 보다는 협력을 통해 전략적인 분야에 자원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 산업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이제 흘러간 물레방앗간을 다시 틀고 싶지 않도록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