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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묵 인터넷부장

기업에서 CEO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특히 빠른 대응력이 중시되는 디지털시대에 CEO의 판단력은 거의 기업의 사활을 좌우한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GE의 잭 웰치나 시스코의 존 체임버스같은 유능한 CEO들은 대주주보다 더 막강한 경영권을 행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잭 웰치가 「기존의 것은 모두 파괴하라」고 외쳐도 주주들 가운데 누구하나 이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잭 웰치가 다른 회사로 혹시 옮기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눈치다. 또 일각에선 투자의 대가로 현재의 무능한 CEO를 갈아치우는 사례도 다반사로 벌어진다. 형태는 달라도 이 두가지 모두 전문경영인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달초 우리경제를 긴장시켰던 현대사태는 정씨 일가의 경영일선 동반퇴진이라는 노회장의 초강수로 마무리됐다. 물론 이를 우리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오너경영체제의 패배로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영속할 것 같아 보였던 재벌 세습경영 체제에서 나타난 「자발적인」 첫 브레이크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를 계기로 그간 독단적인 「황제경영」의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졌던 전문CEO의 책임경영 분위기가 빠르게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환경이 아직 이같은 분위기를 흡수할 만한 준비가 안돼 있다는데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뿌리내리기엔 너무 척박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유능한 전문 CEO도 턱없이 부족하고 이를 받아줄 만한 기업문화도 아직 조성돼 있지 못하다.

유능하고 젊은 CEO가 많다고 소문난 인터넷업계만 봐도 그렇다. 현재 우리나라 인터넷산업은 초기 워밍업단계에서 발진(테이크오프)단계로 진입중이다. 때문에 이 단계에 걸맞은 능력을 갖춘 전문경영인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수익성확보 논쟁이 그 좋은 예다.

그러나 현재 CEO들은 아이디어와 기술 하나로 창업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발진단계에 걸맞은 경영능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그러한 경험을 지닌 사람이 거의 없다. 실제로 온·오프라인의 통합추세가 두드러진 요즘에도 온라인의 「선수」들은 오프라인의 경험이 부족하고, 오프라인엔 온라인 경험이 전무한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경영인들이 대부분이다. 벤처 역사의 일천함이 가져다준 어쩔 수 없는 결과라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다.

반면 벤처 역사가 30년이 넘어 CEO 저변이 넓은 미국의 경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시에 경험한 유능한 인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결국 세계시장에서 이들과 싸워 이기려면 규모 있는 오프라인쪽에서 영업과 마케팅 등의 관리 경험을 쌓았으면서도 온라인 마인드가 투철한 CEO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능력있는 전문 CEO의 기근현상과 함께 전문 경영인체제 착근의 또 다른 큰 걸림돌은 바로 기업문화의 부재다. 이같은 사정은 젊은 CEO들이 판치는 인터넷업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인터넷업계의 판도는 이제 몇 개의 축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흔히 자금줄의 출처를 기준으로 「L사단」 「K사단」 「S사단」 등 대략 5개의 인맥으로 분류된다. 이들 사단밑에는 많게는 10개 이상의 관계사들이 포진해 있다. 또 이들 계열사 CEO 모두는 전문경영인임을 자처한다.

하지만 이들 사단을 거느린 맹주는 정작 기존 재벌사의 오너못지 않은 권한을 행사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 개별기업은 신규사업 진출이나 외자유치 등의 주요사안들은 물론 일상적인 제휴에 이르기까지 맹주의 눈치를 보기가 일쑤다. 한 예로 커뮤니티포털업체인 N사의 경우는 테헤란밸리에 찬바람이 불기 바로 직전에 좋은 조건의 외자유치를 성사시킬 기회를 놓쳤다. 주된 속사정은 N사의 대주주인 이모사단에서 주주들의 지분감소 등 자신들의 이익에 배치된다는 이유를 내세웠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론이지만 이때 외자유치를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인 경영환경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무조건 재벌오너식 경영은 악이고 전문경영은 선이라는 단선적인 사고를 강조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같이 기술과 시장이 급변하는 디지털 정보화시대에 오너의 지적능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이미 특정 재벌 오너의 결정적인 오판으로 우리 모두가 상당한 시련을 경험한 바 있다.

우리경제의 대안으로 부상중인 인터넷 업계에서조차 전문경영인 체제가 구축되기 어렵다면 이는 분명 심각한 문제다. 또다시 대주주는 재벌 오너 흉내를 내고 능력없는 전문 경영인이 이런 대주주들의 눈치만 본다면 우리나라 인터넷 기업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