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남북정상의 만남 그 이후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이 분단 55년 만에 평양에서 처음 마주한 역사적인 날이다. 체제와 이데올로기로 인해 반세기 동안 서로 등을 대 온 남북의 최고지도자는 이날 한민족과 전세계인에게 통일의 길목으로 진입할 수 있는 큰 등불을 켜보였다.

이날 오전 서울공항을 출발한 김대중 대통령은 10시 40분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한의 최고지도자를 직접 공항에 나와 영접했다. 김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북한측 인사들을 소개받았고 도열해 있는 북측 사열단의 인사를 받기도 했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 훈풍을 불어넣을 수 있는 역사적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남북의 장벽은 높고 험하기만 했다. 같은 민족이 동란의 아픔을 겪었고 1000만 이산가족은 수백리에 불과한 저편 가족들의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다. 세월의 뒤안길은 민족 정체성마저 흔들어 놓았고 이데올로기의 너울은 이질감만 깊이 각인시켜 놓았다. 민족상잔의 깊은 상처는 서로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을 끌어안고 있다.

문화·경제·사회적 괴리 또한 이에 못지 않다. 한글과 조선어가 나뉘어 있고 통역이 끼어들지 않으면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대화가 힘들다. 경제적 격차는 더욱 심화돼 남쪽에서 지원하지 않으면 힘겨울 정도로 북측은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분야의 50년 「분단」은 50년이 족히 걸려야 봉합이 가능할 정도로 단절현상을 보이고 있다. 분야별 표준이 비슷한 것보다 다른 게 많고 정보화의 기초가 되는 국어정보처리분야는 각기 다른 길로 가고 있다. 예컨대 한글의 자모 순서와 컴퓨터처리를 위한 한글 코드, 컴퓨터 자판 배열이 우리말 처리 방식과 전혀 달라 같은 우리 말임에도 컴퓨터가 제대로 감지 할 수 없을 정도다.

이번 남북정상의 최대 의제는 경협문제와 이산가족 상봉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민족 상잔 그리고 분단의 고통을 봉합한다는 의미에서 경협보다 더 우선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본다. 더욱이 이 문제는 인도적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대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특히 경협문제는 남북한이 호혜주의 원칙에서 추진할 수 있는 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투자보장협정 등 제도적인 보완장치가 마련돼야 하며 통일 이후의 산업배치 차원에서 남북교역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남북한이 정보 공동체로 함께 갈 수 있는 길이다. 이 문제는 남북교역 확대 및 투자효율 측면에서 파급 효과가 매우 크다는 점에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일부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한글 도메인에 대한 통일화 작업과 전산처리용 자모순서 통일안과 통일규격이 협의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남북한의 노력이 절실하다 하겠다. 그 방안중 하나는 문화교류다. 최근 남한을 방문한 평양교예단의 공연은 좋은 예라 할 수 있으며 이같은 남북교류는 크게 확대돼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는 남북한의 방송교류다. 방송은 그 시대의 실상을 그대로 알려주고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소구력이 매우 높다. 오늘날의 통일 독일을 있게 한 것도 다름아닌 방송이었다.

남북한 문화산업 협력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북한의 애니메이션업계와의 협력과 북한 영화사와의 합작영화 제작은 남북한의 인적교류 차원에서 검토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남북정상이 만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사건이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몇개의 성상을 쌓아야 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일 독일의 탄생도 서독의 빌리 브란트수상이 동독의 슈토프 총리를 방문한 이후 무려 19년이나 걸렸다.

2000년 6월 13일, 이날의 감격은 그날을 위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둬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