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전자제품과 환경오염-윤원창-

TV에 다이옥신과 구조나 성분이 비슷한 독성 화학물질인 브롬(Br)화 다이옥신이 상당량 함유돼 있다는 일본 교토대 환경보호센터의 연구결과가 엊그제 외신을 통해 보도되면서 다이옥신 문제가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이제 우린 정말로 안심하고 사용할 것이나 먹을 게 없어져 버린 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지금까지 육류, 생선, 일반 산모들의 초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서 다이옥신이 다량 발견됐다는 소식에 비하면 이번 뉴스는 일반인들의 관심도나 파문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간의 다이옥신 파동을 고려하면 가전업체나 TV 판매상들은 일말의 당혹감과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자칫 이번 소식이 그렇지 않아도 침체된 TV시장을 꽁꽁 얼어붙게 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일본 교토대측의 연구결과 발표에 대해 브롬함유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국제적 조직인 브롬과학환경회의측이 곧바로 이를 부인한 것이 잘 대변해 준다. 일본 교토대측은 TV 회로기판과 외장 케이스에 함유된 독성 화학물질의 경우 처음부터 방화재료에 불순물로 섞여있었거나 아니면 세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된 브롬화 방화재료에서 나온 부산물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브롬과학환경회의측은 『브롬화 방화재료가 안전한 물질이며 가전제품 등을 만드는 과정에서 문제의 독성 화학물질이 형성됐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모유 검출로 인체에까지 다이옥신이 농축된 것을 확인한 마당에 TV에 다이옥신이 포함됐다 안됐다는 것을 가리는 게 중요하지 않다. 다이옥신은 풍요로운 현 생활양식을 이끈 석유화학문명이 가져온 부산물이다. 때문에 당장 TV에 다이옥신류의 독성물질 함유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것보다는 냉철히 대책마련에 나서는 것이 시급하다. 우리나라도 현황을 조사해 함유 정도에 따른 출하 기준을 만들어야 하며 근본적으로는 이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를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다이옥신을 쓰레기 소각장에서나 배출되는 물질쯤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다이옥신이 생태계에 축적되는 경로는 사실상 우리가 쓰는 석유화학제품 수만큼이나 무한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다이옥신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이옥신 파동이 그래왔듯이 이번 TV에 다이옥신과 비슷한 독성 화학물질이 상당량 함유됐다는 소식도 며칠 지나면 모든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수 있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다이옥신 문제의 본질과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한 채 일부 측정 분석결과를 놓고 너무 민감하게 일과성으로 반응해온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선진국은 지난 80년대 중반 이후 다이옥신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비한 반면 우리는 쓰레기 소각로 문제와 벨기에산 육류의 다이옥신 오염 파동을 겪으며 이에 대한 인식만 갖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대책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세계가 다이옥신 문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가리지 않고 악영향을 줄 수 있으며 머지않아 이대로 간다면 후손에게까지 물려주게 될 환경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다이옥신은 21세기 환경문제의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국제사회에서는 위해성이 밝혀지기 이전에라도 미리 조심하자는 합의가 이뤄진 만큼 우리도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앞으로 공장 폐수나 배기가스가 아닌 컴퓨터 등 전자제품이 우리 환경을 위협하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 될 것이라는 환경전문가들의 지적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비즈니스위크지는 최신호에서 쓸모없게 된 PC가 각종 독성을 배출함은 물론 연소할 때 다이옥신과 같은 발암물질을 내보내는 등 컴퓨터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폐기된 컴퓨터와 TV 1대에 약 2.2㎏의 납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이를 모두 합하면 미국 대륙 전체에 있는 납의 40%를 차지하는 양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번 TV의 다이옥신 함유 문제는 석유화학문명에 던지는 경고로 볼 수 있다. 이 경고를 그냥 무시해 버리느냐 아니면 겸허히 받아들여 새로운 지속 가능한 세계를 건설하느냐는 것은 이제 전자업체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