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유통시장에서 힘겨루기-양승욱-

누가 21세기 인터넷시대의 유통을 주도할 것인가.

최근 유통시장에서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간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유통환경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유통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제조업체나 유통업체의 끊이지 않은 갈등이 점차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유통, 특히 가전유통은 지난 90년까지만 하더라도 전적으로 가전제조업체에 의해 이끌려 왔다. 그룹계열사인 가전제조업체들은 배타적인 직영대리점을 운영하면서 매출의 90% 이상을 대리점을 통해 올릴 수 있었다.

물론 대리점들의 반발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밀어내기식 영업 등 제조업체들의 횡포에 맞서 대리점들의 반격이 있었지만 찻잔속의 미풍에 그쳤다. 자본을 앞세운 제조업체들은 말 그대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리점들의 공세를 무력화시켜 왔다. 전적으로 제조업체들에 의해 유통이 주도돼왔던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할인점, 양판점 등 새로운 형태의 유통점들이 속속 나타나면서 제조업체 중심의 유통시장에 커다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어느 한 회사 제품이 아닌 여러 업체들의 다양한 제품을 갖추고 대량구매에 따른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층을 공략하는 대형양판점의 등장은 제조업체에 기울어졌던 추를 팽팽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대부분의 유통관계자들은 얼마 안가서 우리나라 유통도 전적으로 양판점이 주도하는 일본을 뒤따라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지난 89년 등장하기 시작한 양판점, 할인점 등 신유통점에서 판매되는 가전제품은 올해 처음으로 대리점 판매량을 넘어서 전체 가전제품 판매량의 45%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지난해 가전매출의 60%를 담당해온 대리점들은 올해 40%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전유통시장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같은 시장변화는 가전업체들이 유통업체에 자신의 제품을 팔아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도 벌어지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세를 모아가고 있는 인터넷 쇼핑몰은 새로운 가전유통채널로 확고한 자리를 잡으면서 유통업체에 넘어갔던 힘을 다시 제조업체에 넘겨주려고 한다.

가전업체들이 스스로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어 대리점을 통하지 않고 직접 판매에 나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양판점 시대가 만개하기도 전에 우리나라 유통은 한단계가 생략되면서 곧바로 인터넷 유통시대로 접어든 셈이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대리점들은 과거보다 더욱 심하게 제조업체들의 배려를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됐다. 또 양판점이나 할인점 등은 제품을 받기 위해 어렵사리 되찾은 유통시장에서의 균형을 무너뜨려야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빼앗겼던 힘을 되찾기 위한 가전업체들의 움직임은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얼마전 가전업체들은 인터넷 쇼핑몰에 제품을 공급하는 자사의 대형대리점들에 제품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유통관계자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충돌, 제조업체들의 유통장악 의도, 새로운 유통구조인 인터넷에 대한 제조업체의 대응책 등 여러가지 표현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의 판매량이 급증, 새로운 유통채널로 급부상하는 것을 막기 위한 사전조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터넷 쇼핑몰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중소대리점들의 하소연이 배경이 됐음은 물론이다.

인터넷시대에서 유통은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과 함께 제품을 갖고 있는 제조업체들이 우위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유통은 고객인 소비자들의 선택에 의해 좌우돼야 한다. 소비자들에게 좋은 제품을 값싸게 공급하는 유통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쟁논리에 의해 저렴한 가격으로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사는 것은 소비자들의 권리다.

인터넷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보편성에서 하나의 도도한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누려야할 혜택을 제조업체들이 가로막는 것은 인터넷의 기본이념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