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벤처시대는 저물지 않았다...원철린 산업전자부장

IMF로 꺼져가던 우리 경제를 회복시키는데 있어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벤처기업이 힘을 잃고 있다. 벤처기업의 거품론이 확산되면서 벤처열풍도 사그라졌다. 더구나 벤처기업의 주축을 이루면서 시장을 주도해왔던 인터넷기업 열기도 한풀 꺾였다.

벤처기업을 컨설팅해 주고 있는 업체 사장은 『인터넷창업을 컨설팅해 달라는 업체들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창투사들의 투자열기가 예전만 못하다』면서 하루아침에 돌변한 세태에 씁쓸해 한다.

어느 새 「인터넷이 30년이상 갈 것」이라는 앨빈 토플러의 예언도 뒷전으로 물러나 있다. 불과 1∼2년밖에 안된 인터넷 기업들에 수익성모델을 내놓지 못한다고 야단치면서 인터넷기업의 미래를 불안한 눈으로 보고 있다.

현실적으로 코스닥시장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올 초만해도 그렇게도 잘 나가던 벤처기업들의 주가가 지금은 절반 이하로 빠져 있다.

코스닥이 주저앉으면서 투자자들이 벤처기업 특히 인터넷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다.

한때 인터넷기업이라면 사업계획서를 보지 않고도 돈을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이제는 고개를 돌리고 있다고 한다. 설령 투자를 하더라도 예전과 달리 사업계획서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투자배수도 수십배를 주기보다는 한자리 숫자로 낮추고 있다. 투자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정상으로 되돌아 온 듯 싶다. 그런데도 정상이 비정상으로 비치고 있는 게 요즈음의 현실이다.

더구나 자금난까지 겹치면서 시중에서는 별의 별소리가 흘러 다니고 있다. 벤처기업의 「5월 위기설」을 넘어 「7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위기설의 요지는 간단하다. 벤처기업들이 외부로부터 자금조달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수익성없는 업체 스스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일부 배부른 벤처기업체들은 7월을 견딜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벤처기업들은 지탱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울한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테헤란밸리에 입주해 있는 벤처기업들중 일부가 사무실 임대료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무실이 비기 시작하면서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했던 테헤란밸리의 사무실 임대료도 꺾이고 있다. 7월 위기설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사회 분위기도 예전같지 않다. 마치 벤처기업들을 모두 재테크에 열중해 떼돈 번 졸부로 폄하하면서 벤처기업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엷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설상가상으로 대기업들의 벤처기업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다. 정부의 재벌개혁으로 한동안 숨을 죽였던 재벌들이 벤처기업들의 입지를 점차 좁혀 오고 있다.

인력을 벤처기업에 대거 빼앗겼던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견제하기위해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걸어놓았던 약관을 들먹이면서 직원들을 소송하지 않나, 3세대에게 경영권을 세습시키기 위해 인터넷 기업을 설립해 투자에 나서고 있다. 재벌들이 다시 벤처기업에 손을 뻗치고 있다.

정부도 두손 놓고 있는 느낌이다. 통일에 대한 기대치만을 잔뜩 높이는데 관심을 보일 뿐 우리의 경제를 지탱해왔던 벤처기업에 대해서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

그러면 벤처기업시대는 저물었는가. 그렇지 않다.

이제까지 벤처기업들이 쌓아온 공은 무척 크다. 재벌들의 탐욕이 몰고온 우리 경제의 붕괴를 벤처기업이 다시 살려 놓았다. IMF시절 10% 이상 치솟았던 실업률을 3∼4%대로 낮추어 놓은 것도 벤처기업이다. 우수한 인력이 벤처기업으로 몰리면서 우리 경제를 지배해왔던 재벌들의 경영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도 벤처기업이었다.

분명히 벤처기업의 공은 과보다 많다. 벤처기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벤처기업의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때가 있는 법이다.

한 벤처기업 사장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 하느냐』면서 『벤처기업에 돌을 던지기보다는 조금은 시간을 두고 살펴줘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벤처거품으로 상실했던 벤처정신을 되찾아야 한다. 아직도 컵라면으로 때우고 밤을 지새면서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벤처기업이 많다. 아이디어만을 갖고 모험하는 벤처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 벤처기업이 우물안 개구리처럼 좁은 내수시장을 지향하는 사업방식에서 벗어나 넓은 해외시장으로 뻗어 나가야 한다. 이런 개척정신이 살아 숨쉴 때 벤처기업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도 다시 나서야 한다. 벤처기업들을 규제하고 있는 제도를 개선하고 벤처기업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벤처기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