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디지털 CEO가 되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화무십일홍이라는 고사성어는 그동안 프로야구 감독직에 종종 비유되어 왔다. 프로야구 감독이란 직업이 각본없는 드라마를 연출하는 다이아몬드의 연금술사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도 하루 아침에 패전지장의 멍에를 쓰고 무대 저편으로 사라져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가수라는 직업도 마찬가지다. 대박을 터뜨렸을 때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지만 질곡의 나락으로 빠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요즘에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인 CEO(Chief Executive Officer)들도 이러한 운명에 직면한 것 같다.

지난 5월에만 90개 기업의 CEO가 도중하차했고, 6월 들어서는 하루 평균 6명의 CEO가 옷을 벗고 있다는 미국의 고급간부 재취업 알선업체 챌린저사의 최근 발표가 입증하듯 CEO들의 수난이 이만저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이들중에는 제록스사의 릭 톰슨과 프록터앤드갬블사의 더크 재거 같은 거물급 CEO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지만 릭 톰슨이 1년, 더크 재거가 21개월 만에 해임됐다는 사실은 자못 충격적이다.

샐러리맨의 마지막 목표인 CEO의 운명이 이처럼 화무십일홍이 된 것은 단기승부에 집착한 신경제 벤처주주들이 실적을 못낸 CEO를 갈아치우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현상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과 전자상거래가 보편화되는 디지털 경제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의 최고경영자인 CEO부터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프로농구팀인 LA레이커스가 시카고 불스 시절에 여섯 번이나 챔피언 반지를 낀 「우승 연금술사」인 필 잭슨 감독을 영입, 올해 NBA정상에 등극할 수 있었던 것처럼 사령탑 교체라는 극약처방을 통해 기사회생의 기틀을 마련하거나 정상의 자리에 올라 선 기업이 무수히 많다.

세계적인 기업인 GE만 해도 그렇다. 21세기 문턱에서 멸종의 길로 접어들 것이란 재계전문가들의 지적을 비웃기라도 하듯 탄탄대로를 질주하고 있는 것은 잭 웰치라는 걸출한 CEO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등 또는 2등이 아닌 사업은 포기하고 항해루트를 「전통」에서 「수익성」으로 바꾸는 과감한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GE도 없었을 것이다.

CEO가 기업의 미래를 바꾼 사례중의 하나다. 이처럼 조직의 리더는 세상의 변화를 꿰뚫어 보고 때로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리더의 필수적인 자질로 순간적인 상황판단 능력을 꼽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변화에 맞춰 조직을 정비하고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리더의 순간적인 상황판단 능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리더가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면 조직원이 변화에 끌려다니지 않고 변화를 주도할 수 있지만 리더의 자질이 부족하면 전체 조직이 어려움에 빠지거나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된다.

리더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요즘에는 CEO의 이미지를 기업의 이미지와 동일시하는 추세다. 칼리 피오리나를 영입한 휴렛패커드 주가는 올라가고 전문 경영인을 빼앗긴 루슨트테크놀로지스 주가는 내려간 것도 CEO의 역량이 기업의 시장가치를 좌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미국의 대기업인 제록스, 프록터앤드갬블, 캠벨이 폴 얼레어, 존 페퍼, 데이비드 존슨을 잇따라 CEO로 복귀시킨 것도 이같은 추세와 맥을 같이 한다. 이들이 물러난 이후 고객만족도 및 시장점유율이 떨어지자 주주들이 떠밀다시피 이들을 복귀시킨 것이다.

물론 이들이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을 입증할 수 있을런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나 CEO의 역량에 따라 기업가치가 결정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요즘 들어 CEO들이 수난을 겪는 이유도 여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디지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이 도태되듯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아날로그형 CEO들이 디지털 CEO로 급속히 교체되면서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승리할 수 있는 디지털시대다. 따라서 큰 공장을 짓고 매출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과거 경영자들과는 모든 면에서 달라져야 한다.

우리기업의 CEO들은 전문경영인의 역량에 따라 기업의 가치가 결정되는 21세기 디지털시대에 걸맞는지 이 순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