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인터넷바로보기

김경묵 인터넷부장

삼성은 누가 뭐래도 우리경제의 커다란 축이다. 실물경제를 쥐락펴락해 온 막강한 지금력면에서나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시해 온 기업문화 측면에서도 삼성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올해만 봐도 삼성의 경상이익은 8조원을 훨씬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웬만한 그룹사의 외형보다도 큰 규모다. 삼성의 캐시플로는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해외유력업체 IT조차도 부러워할 정도다.

삼성의 힘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조직력이다. 비서실이나 구조조정본부로 대변되는 브레인들의 기획력과 치밀성은 경쟁 그룹사에서도 인정할 만큼 정평이 나 있다.

이같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그간 삼성은 인터넷사업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타난 현상만 보면 삼성은 그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고서도 인터넷 열풍속에선 무기력했다. 1000여명이 넘는 IT계열사의 인재들이 인터넷기업으로의 엑소더스를 감행할 때도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너무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당시로선 역부족으로 비쳤다.

삼성물산·SDS·유니텔·전자·캐피탈 등 계열사별로 인터넷사업이 난립할 때도 뒷짐을 졌다. 전에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그룹차원의 「교통정리」로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삼성다움」이기 때문이다.

일련의 삼성답지 않음은 두가지 측면에서 대답이 가능할 것 같다. 첫째는 삼성이 정말 변하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승계구도와 관련해 말못할 속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같은 해석은 현재까지 진행돼온 삼성의 인터넷사업 로드맵을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삼성이 인터넷사업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95년경. 아직 인터넷이 유망사업으로 검증되기 전이다. 미국 출장중인 이건희 회장이 당시 삼성SDS 대표인 남궁석 의원과 함께 방문한 한 외국업체의 브리핑을 통해서다. 이후 이 회장은 인터넷사업화에 대한 미션을 비밀스럽게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어느 기업보다도 인터넷에 대한 준비가 빨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실제 진행상황은 그렇게 매끄럽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기존 오프라인 조직과의 충돌 가능성에 따른 우려가 컸겠지만 무려 3번에 걸친 구조본 산하 인터넷 TF팀의 발족과 해체를 반복한 끝에 인터넷사업의 통합과 계열사별 사업추진, 그리고 인터넷 비즈니스 본고장인 미국에 전담회사 설립방안 등 오락가락하는 인터넷 전략을 수립했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보면 삼성은 인터넷사업을 제대로 벌일 수 있는 2년이라는 기간을 놓친 셈이다.

이후 TF팀이 유명무실해 지면서 김인주 전무를 비롯한 재무팀 산하 신규사업팀에서 인터넷사업에 대한 강력한 추진의사를 밝혔다. 승계구도가 확실한 이재용씨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또 e삼성이라는 인터넷 통합회사의 실체가 나타난 것도 이 시기다.

e삼성은 여러가지 면에서 삼성의 변화 기류를 읽게 해준다. 우선 삼성은 이제까지 삼성이라는 이름앞에 어떤 토씨도 용납하지 않았다. 인터넷주소인 URL에서조차도 긴 풀 네임을 그대로 쓸 정도였다.이런 상황에서 e자가 붙은 삼성의 부상은 가능하면 삼성과 애써 무관성을 강조하고 싶은 또 하나의 「작은 삼성」의 출현으로 풀이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물론 이재용씨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해석이다. 이재용씨가 어느 사석에서 『오프라인에서 얻은 삼성의 명성에 기대서는 e삼성은 성공할 수 없다. 전혀 다른 판을 짜야한다』는 발언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e삼성은 우선 아시아지역을 아우르는 메가사이트를 형성해 B2B와 마켓플레이스시장을 석권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삼성의 해외네트워크의 지원을 받을 경우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 다음 국내시장으로 눈을 돌려 계열사별로 운영해온 인터넷사업을 묶는다는 복안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국내에선 시장잠재력이 적은 커머스보다는 생명, 카드, 화재 등 관련 기업을 온라인으로 묶는 금융포털을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을 아는 「선수」들에 따르면 e삼성의 이같은 전략은 실패보다는 성공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용씨의 이름은 또 다시 전면에 못나서고 있다. 삼성측이 밝힌 대외적인 이유는 경영수업 때문이다. 후계자의 경력에 자칫 손상이 갈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 싶지 않은 비서실이나 구조본의 입장을 감안할 때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이재용씨 자신은 「남이 잘 차려놓은 밥상」보다는 자신이 상을 차리기를 원하다는 후문이다. 그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인터넷 CEO들과의 경쟁에서 실력을 검증받기를 원하는다는 얘기다. 불필요한 경영수업보다는 기회를 주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오히려 이씨를 싸고 도는 소문을 줄이고 삼성의 e비즈니스사업에 가속도를 붙이는 지름길일 것이다. 여타 그룹의 e비즈니스사업을 3세 경자들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마당에 유독 삼성만 전면에 못나설 이유는 없다고 본다.

이처럼 일개기업의 인터넷사업을 둘러싼 속사정을 장황하게 들여다 본 것은 그것이 삼성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우리 경제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면서 끌고 나갈 것이다. 그것이 세계 경제의 대세인 e비즈니스분야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