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남북 정상회담 개최 한달

55년 동안 지속되어온 남북간 극한적 대립구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바꾼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정상회담 꼭 한달 만인 엊그제에는 남북한이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자 명단을 각각 교환하기도 했다. 이제야 남북정상이 합의한 「남북공동선언」의 가시적인 결과물이 하나씩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기업들의 움직임이 한층 빨랐던 남북경협에서는 아직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물론 남북경협이 정상회담에서 선언적으로만 이뤄졌고 남북경협에 필수적인 사회간접시설 확충, 투자보장 문제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 많기 때문에 회담 한달 만에 성과를 기대하는 게 무리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난 한달 동안 기업들이 발표한 남북경협 관련계획이나 경제단체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정상회담 이후 남북경협에 대한 재계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커진 게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정상회담 이후 그간 중단 또는 연기됐던 경제단체 및 기업체의 대북사업 재추진은 활기가 넘칠 정도였다. 「남북공동선언」에서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데 합의한 이후 기업들은 남북경협을 위해 사내 「대북사업팀」을 보강하거나 새로 구성하고 다양한 방식의 대북 진출방안을 다각도로 타진해왔다. 특히 지난 11일에는 8개 중소 전자업체 대표들이 북한을 다녀온 것을 비롯, 삼성이 오는 25일 대표단을 보내기로 하는 등 기업인 방북도 잇따르고 있다. 각 기업과 단체들은 대북사업을 재개하면서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경협방안을 제각각 쏟아내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한 경협활성화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에 발맞춰 경협관련 단체도 우후죽순격으로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자·정보통신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타 산업계에 비해 더 적극적이다시피 할 정도다. 북한에 PC·소프트웨어 보내기 등 북한 돕기에 발벗고 나선 정보통신업체들은 하나 둘이 아니다. 현대는 최근 정주영 명예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의 유무선 통신사업에 직접 참여하고 또 금강산 지역에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은 첨단기술연구개발단지(가칭 금강산밸리)를 조성하기로 북한측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삼성도 오는 25일 대표단을 북한에 보내 그간 추진해오던 대북사업을 본격화할 작정이라는 소식이다.

이같은 기업들의 대북사업 활동은 우선 성공 여부를 떠나 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현실을 실감케 하는 대목들이다. 특히 현대의 통신분야 협력사업 발표가 사실이라면 남북경협이 더 이상 선언적인 수준에 머물지 않게 됐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힐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이들 사례로 남북경협이 곧바로 가시화되고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속단해서는 안된다. 현재 발표되고 있는 기업들의 대북사업이 대부분 남북한 당국간의 대화 수준을 앞질러가기는 어렵고 이중과세 방지 등 제도적 뒷받침이 어느 정도 이뤄지느냐에 따라 기업들의 대북사업 속도가 결정될 것이라는 남북한 경제전문가들의 지적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공동선언문에 표현된 남북경협을 요약하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다. 한마디로 남북을 아우르고 양쪽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자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남북경협 방안으로 흔히들 말하는 남쪽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쪽의 노동력의 결합하는 것, 쉽게 말해 값싼 노동력으로 이익을 더 내겠다고 동남아 국가에 진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균형발전을 하자고 하고서 부자가 돈벌 생각만 한다면 균형이 이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불균형이 더 커질 것인 만큼 이러한 논리의 경협은 가시화하기 어렵다.

이런 점을 고려, 지금까지 벌여온 대북사업에 대해 냉철하게 재평가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접근방법을 모색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남북간 불신의 상당 부분이 우리 기업들의 무책임한 사업성 약속의 남발에 있었다는 북한측의 비판을 단순히 그들의 억지주장만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북한이 나진·선봉 경제특구에 우리 기업의 접근을 제한한 이유 중 우리 기업들이 현지 방문에서 말한 불가능한 약속들이 나중에 들통난 것도 그 하나라는 얘기가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시작부터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덤벼들면 결국 북한에 박탈감만 부추겨 남쪽에 대한 조직적인 경계심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공동선언문에 명시됐듯이 남북간 산업의 상호 보완적 구조로의 개편, 분단국토의 균형있는 개발, 그리고 동북아 지역 경제발전의 중심적 위치확보 등 중장기 과제들이 양방간에 허심탄회하게 토론되어 합의점에 도달할 때 상생의 특수가 우리를 기다릴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