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에서 횡행하는 닷컴위기론을 보면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연일 계속되는 뭇매는 내실있는 우량업체건 빈껍데기 업체건 구별도 없다. 그저 닷컴업체면 무조건 안된다는 식이다. 일부 언론에서 증폭시키는 이같은 위기론은 그 실체가 모호할 뿐 아니라 대안조차 없다는 점에서 너무 무책임하다는 인상마저 든다.
닷컴업체들이 최근 당하는 뭇매는 거의 「죽을 죄」 수준이다. 연일 닷컴이 아닌 닷곤(Dot Gone)을 외치는 목소리에 잔뜩 주눅이 들어있다. 분명한 건 우리 국민의 삶을 땅끝까지 끌어내렸던 IMF의 주범인 재벌이나 공적자금이란 미명하에 우리의 혈세를 앗아간 금융권에 대해서도 이 정도의 돌던지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마치 국민을 상대로 닷컴업체들이 「사기」라도 쳤다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닷컴업체들이 국민에게 끼친 잘못이나 해악이 기존 공룡기업보다 더했는가. 아니면 정말 닷컴업체들이 국가의 경제방향을 왜곡시킬 만큼 큰 사기라도 쳤는가.
먼저 이에 대한 확실한 대답이 있어야 될 것 같다. 그래야 현재의 혼란이 진정될 것 같다. 이를 위해선 두가지 방향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는 닷컴업체들이 앞장서 추진해온 e비즈니스가 과연 국가경쟁력 강화에 역행한 행위였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이제 e비즈니스는 세계경제의 대세로 자리잡았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닷컴업체들은 이를 국내에서 가장 먼저 전파했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 공룡재벌들을 자극해 국가 전체가 e비즈니스 대열에 동참하는 데 촉매 역할을 했다.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만은 닷컴업체들의 과오는 없다.
두번째는 e비즈니스를 추진하는 주체로 기존 오프라인을 대표하는 공룡재벌과 온라인 닷컴업체 중 어느 쪽이 더 적합한가의 문제다. 닷컴위기론의 확산도 결국 이 논제와 맞물려 있다고 여겨진다. 현재 닷컴죽이기의 상황은 당초 기대와는 달리 e비즈니스도 기존 재벌그룹이 더 잘 할 것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적지않은 영향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에도 몇가지 오류는 있다. 이제 e비즈니스는 온·오프라인의 통합모델이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굳어지는 추세다. 상호 반쪽의 성공만으로는 e비즈니스의 파괴력을 일궈낼 수 없다는 사실이 검증됐기 때문이다. 초기 온라인업체에 일방적으로 몰렸던 오프라인 업체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통합모델이 급부상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온오프라인의 통합 역시 일방통행은 아니다. 물론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오프라인이 주체가 된 온라인 끌어안기다. 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인수해 통합을 이룰 수도 있다는 얘기다. AOL의 타임워너 합병이 좋은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이 오프라인의 공룡기업 우세로 기울고 있는 것은 결국 「총알」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이유뿐이다.
사실 오프라인의 기업들은 해당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마케팅과 영업적 측면에서 기반이 탄탄하다. 이를 토대로 기존 주력산업의 e비즈니스에 나설 경우 엄청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GE나 시스코가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독 우리나라의 재벌기업만 시너지 효과가 큰 본연의 시장은 간과한 채 이미 닷컴업체들이 선점한 e시장에 너나할 것 없이 뛰어들고 있다. 스핀오프나 벤처지주회사 설립을 통해 엄청난 자금력을 쏟아붓고 있는 것은 분명 큰 기업의 「e비즈니스」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요즘 같은 사회분위기에 편승해 오프라인업체들이 닷컴업체들의 목을 옥죌 경우 통합모델의 파트너 역할을 할 온라인업체를 어디에서 구할 것이냐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도끼로 제발을 찍는 격이다. 더욱이 빈 공간으로 남게 된 국내 닷컴업체 자리엔 해외유력 닷컴업체들이 들어올 공산도 크다.
또다시 대기업 특유의 돈붓고 안되는 일 없다는 식의 밀어붙이기가 e비즈니스 시장에서 재현돼서는 안된다. 대기업은 닷컴시장의 직접진출보다는 오프라인의 강점을 온라인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배가시키는 것이 상책이다. 신규창출되는 「e시장」보다는 더 큰 규모의 기존 산업 효율화를 통한 e시장을 만들어가는 것이 국가경쟁력 측면에서도 분명 바람직하다. 인터넷 비즈니스 시장은 재벌과 닷컴 벤처가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제로섬이 아니라 역할분담을 통해 플러스섬을 창출하는 시장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위기론은 어느 시대나 존재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기우로 끝났고 오히려 적당한 긴장감으로 시대정신의 해이를 막는 순기능을 해준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비록 겉으론 회의적으로 비치는 위기론의 내면엔 항상 동시대를 이끄는 패러다임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최근 확산되는 닷컴위기론에는 전혀 따뜻함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인터넷부 김경묵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