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크스라인> 모험과 사행심: 벤처산업 재도약을 위해...

디지털경제부 이윤재 부장

1년여 전, 사람들은 간혹 신문지면 등에 등장한 인터넷 주식공모라는 낯선 광고를 보고 의구심을 가졌다. 대부분 어떤 회사인지 몰라 투자를 꺼려하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터넷 주식공모는 날이 갈수록 자주 눈에 띄었다. 인터넷 비즈니스가 앞으로 각광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신생 업체들이 아예 인터넷을 자금조달 창구로 활용, 나름대로 짭짤한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코스닥시장이 기지개를 켜면서 증권가에 「미래가치」라는 새로운 테마가 등장한 것도 인터넷 주식공모 확산에 한몫 했다. 그리고 처음에 의심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은 싼 값에 미래가치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인터넷 주식공모에 몰려들었다. 불과 몇개월 사이에 뒤바뀐 변화다.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닷컴에 대한 의구심과 코스닥시장 주가폭락 등으로 벤처업계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벤처위기론이 등장했는가 하면 벤처에 투자한 개미들의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가장 당혹스러운 곳은 바로 벤처기업들이다. 곳간이 비워져가는 벤처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아직은 돈이 넉넉한 벤처기업들도 요즘과 같은 분위기에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기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로 인해 벤처산업, 더 나아가 국가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정부도 이를 우려해 다각적인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어떠한 경우도 벤처산업이 위축돼서는 안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에 「벤처」와 「사행」은 구분되고 걸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먼저 비즈니스 모델을 보자.

대다수 벤처기업들은 새롭다고 생각(판단)하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비즈니스 모델을 이른 시일내에 사업으로 연결하고 대내외적으로 이를 확장하는 데 온힘을 쏟아붓는다. 이 과정에서 전략적 제휴가 활발하게 나타나기도 하며 잇따른 증자를 단행하는 벤처기업도 적지 않았다. 인수나 합병을 통해 몸집 불리기에 적극 나서는 벤처기업도 많아지고 있다. 벤처비즈니스의 속성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벤처를 앞세운 사행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할 때다.

벤처와 사행은 얼핏보면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증자를 통해 회사로 들어온 돈의 일부 또는 상당액을 사장 개인의 통장에서 관리하거나 임의대로 써버려 직원들로부터 원성을 듣는 벤처기업도 있고, 마땅한 수익원도 없으면서 오로지 투자를 받기 위해 각각 다른 업체를 인수하거나 합병한 후 몸집을 불려놓고서는 비대해진 조직을 이끌어가지 못해 전전긍긍하거나 쪼개지는 벤처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허위나 과장된 홍보·광고에 맛들인 벤처기업도 적지 않다. 하지도 않은 수출실적이 홍보되고 매출이 부풀려져 문제를 일으키는 벤처기업이 나타나고 있다. 힘센 기관이나 기업에 주식제공을 미끼로 삼아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려는 벤처기업도 눈에 띄고 있다. 어떤 벤처기업은 사장이 개인의 사재축적을 위해 주식관리에 연연하는, 사행을 서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어찌보면 벤처와 사행은 종이 한 장 차이일 수가 있다. 어느 한 쪽에선 벤처가 절대 버블이 아니고 디지털시대를 맞는 국가경제의 원동력이라고 외치고 다니며, 다른 한 쪽에선 「벤처」라는 이름을 앞세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에 급급하는 양면성이 벤처업계에 상존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를 명확히 가려내려는 움직임이 없다. 그러나 벤처와 사행을 가려내지 않고서는 벤처업계에 쏟아지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벤처산업의 재도약을 기대할 수도 없다. 벤처를 빙자한 사행기업을 걸러내는 일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