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새 술은 새부대에

-양승욱 생활전자 부장 swyang@etnews.co.kr

부도난 세진컴퓨터랜드의 전국 가맹점들이 드림컴퓨터랜드의 가맹점으로 재출범했다. 직영점들과는 달리 프랜차이즈 형태로 독자적인 사업을 전개해 온 가맹점들은 세진이라는 명패가 드림으로 바뀌었을 뿐 기존 해오던 사업은 지속하게 되는 셈이다.

세진의 부도는 국내 최초, 최대의 컴퓨터 양판점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만큼 국내 컴퓨터 유통시장에 치유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상처를 남길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번 드림컴퓨터랜드의 출범은 세진 부도의 후유증을 다소 완화시키는 데 큰 힘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컴퓨터 유통업체들이 드림컴퓨터랜드의 출범에 갈채를 보내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 한편에서는 드림컴퓨터랜드가 과거 세진컴퓨터랜드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그 결과 또한 세진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사실 세진의 등장은 과거 PC메이커와 대리점이라는 폐쇄적인 국내 컴퓨터유통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큰 사건이었다. 90년 부산 지역의 대리점에서 출발해 95년 컴퓨터양판점을 표방하며 서울에 상륙한 세진이 3년여 만에 전국에 250여개의 직영점과 가맹점을 운영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이같은 세진의 급성장 배경에는 여러 회사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한 곳에 모아 소비자들이 한 자리에서 여러 회사제품을 비교해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좋은 제품을 값싸게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세진의 부도는 소비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시대의 흐름과는 달리 컴퓨터유통 환경이 다시 5년전으로 원대복귀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한편으로는 컴퓨터라는 제품이 가전제품과는 달리 양판점 형태의 유통문화가 정착되는데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비록 세진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컴퓨터유통에서 양판점의 성공 가능성은 매우 크다. 일반 전자제품과 마찬가지로 메이커들이 직접 대리점을 운영하는데는 막대한 관리 및 지원비용이 소요된다. 온라인 유통망의 등장으로 소비자들과 메이커들의 직접거래를 위한 장이 마련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통마진을 전제로 한 대리점체제는 가격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또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온라인 유통을 통해 고가의 컴퓨터를 구입하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나라 소비문화에서는 정착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이미 가전유통에서는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할인점이라 할지라도 설치 및 기술지원 등 기술적 애프터서비스가 전제돼야 하는 컴퓨터의 특성 때문에 전문점에 비해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결과적으로 양판점은 대리점 유통과 온라인 유통, 할인점의 단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유통채널인 셈이다.

또 유통시장이 개방되고 국내 컴퓨터시장에서의 판매확대를 꾀하고 있는 외국 컴퓨터업체에 컴퓨터 양판점은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매출을 늘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유통망이라는 점에서 컴퓨터 양판점의 정착은 시기상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세진의 초기성공은 이를 입증해 주는 좋은 사례다.

따라서 드림컴퓨터랜드가 새롭게 출범한 이 시점에서 세진의 전철을 되밟지 않도록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드림컴퓨터랜드는 세진을 밑거름삼아 새로 태어나야지 세진의 연장선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상권을 분석하지 않은 무리한 유통망 확장전략과 이익보다는 외형성장에 급급했던 사업전략, 여기에 과도한 차입경영 등은 세진을 침몰시킨 직접적인 원인이다. 또 특정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함으로써 여러 회사의 다양한 제품을 비교 판매하는 양판점 고유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도 세진을 무너지게 한 또 다른 원인이 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여기에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구매형태는 유통업체들에 신속한 의사결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동안 세진의 경영진 대부분이 대기업 출신으로 유통업체에는 적합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제 세진의 실패를 딛고 컴퓨터 양판점시대를 다시 한번 열어야할 막중한 책임을 지닌 드림컴퓨터랜드가 과거 모래밭에 세워진 세진의 허상에서 벗어나 소비자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컴퓨터 양판점의 모범사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