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린 산업전자부장 crwon@etnews.co.kr
「만나고 싶었습니다/만나고 싶었습니다/우리는 손수건 100장을 가지고 있어야 할 민족입니다/우리는 연사흘 울음바다였습니다/엉엉 울어/멍든 가슴을 쏟아야 했습니다.」
남과 북의 노시인들은 이산가족 상봉의 감격을 이렇게 읊었다. 노시인들의 표현처럼 지난 3박4일은 한반도 전체가 울음바다였다. 반세기의 한맺힌 응어리를 풀어내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봉장면을 본 그 감격을 한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북측에 방문한 어느 소설가는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도 이같은 비극적인 삶을 글로 쓸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3박4일간 서울과 평양에서 벌인 한마당의 슬픈 잔치는 많은 것을 남긴 채 끝났다.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 슬픈잔치의 뒷받침이 됐던 우리 경제를 들여다 보면 어두운 밤이 다가 오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여건들이 속절없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원자재가격은 날로 오르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7월중가공단계별 물가동향에 따르면 원유와 액화천연가스를 중심으로 원재료가격은 전월에 비해 3.1% 상승했다. 유가는 이미 30달러를 돌파해 올 연말에 가면 40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소비심리도 위축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전망조사 결과, 지난 7월중 가계 소비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 평가지수는 98로 6월(98.9)보다 하락했다. 소비자평가지수는 지난 1·4분기만 해도 100을 웃돌았으나 5월 들어 97.6으로 떨어진 이래 석달째 여전히 100 이하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우울한 발표는 계속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하반기 경제전망과 과제 보고서」에서 설비투자증가율은 상반기의 46.8%에서 하반기에는 26.4%로 위축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미국경기도 둔화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마저 나오고 있다. 미 연방준비이사회는 최근 발표한 베이지북에서 소비자지출, 제조업 및 건설업의 활동이 6월과 7월에 둔화되었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반도체, 컴퓨터 등 첨단기기의 경기는 좋기 때문에 일부 성급한 지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기지표상으로 볼 때 우리 경제가 나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제 기업들이 경기침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우리 기업들은 미리 준비를 하지 않아 IMF라는 어려움을 당한 바 있다. 이러한 우를 두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기업들이 사전에 비온날을 대비해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 다행히 올 상반기 우리 기업들의 성적은 상당히 좋았다. 12월 결산 상장기업들은 경기호전에 따른 매출증가와 금융비용 감소에 힘입어 사상 최대 규모의 흑자를 기록했다. 증권거래소에 등록된 12월 결산법인 가운데 은행과 관리대상종목, 대우 등을 제외한 446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 상반기 매출액은 233조원을 넘어 전년동기 대비 21.7% 늘었으며 순이익도 10조4000억원에 달해 34.7% 늘어 났다. 부채비율도 176.9%에서 135.9%로 41%나 낮아졌다.
상장사들만 좋은 게 아니다. 코스닥업체 372개사의 반기매출액은 지난해 10조689억원에서 올해는 13조4541억원으로 34%나 늘어났다.
상반기에 거둔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기업들은 경기침체에 대비해야 한다. IMF시절의 외부로부터 강요당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미래를 대비한 구조조정에 스스로 나서야 한다.
이번 구조조정은 IMF때의 인력감축과 같은 단순한 구조조정이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기업의 미래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기업들은 적지 않은 비용 지출을 감수해야 한다. 상반기 실적을 감안하면 재원조달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우선 인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재교육 투자를 늘려야 한다. IMF에서 경험했듯이 준비없이 일방적인 조직통폐합과 인력감축은 임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오히려 조직의 안정을 해쳤다. 이번에는 비용이 들더라도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하면서 남는 인력들에 대해선 재교육을 제공,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다음으로 IT분야에 대한 투자를 더욱 늘리면서 신규사업에 대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영전문가들은 네트워크시스템구축이 21세기 기업의 생존을 결정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업통신망이 사업확장을 따라 가지 못하면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는 기대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과 인터넷시대의 신규사업을 준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관료문화를 타파할 수 있는 과감한 의식전환과 조직개혁에 나서야 한다. 벤처기업은 벤처기업대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결집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조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