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숲을 바라봐야 한다

정치권 못지않게 방송계 안팎이 어수선하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일제히 디지털 시험방송에 들어간 와중에도 전송방식을 둘러싼 공방이 끊이질 않고 있으며 기대했던 위성방송사업자 선정을 위한 원그랜드 컨소시엄 구성도 숱한 잡음만 남긴 채 무산되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이에따라 디지털방송과 위성방송에 대한 본방송 일정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이러다가 정말 제대로 된 방송을 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안타깝다 못해 착잡할 뿐이다. 주무부처는 우두커니 먼산만 바라보고 있고 조정역할을 자임한 방송위원회는 업계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위성방송사업자 선정문제는 원칙을 고수했어야 했다. 조정이란 게 말썽의 소지를 조금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시장경쟁원리에는 맞지 않는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콘텐츠 수급문제를 꼼꼼히 따져보고 운영사업자로서 자격이 확실한가를 세심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특히 미래지향적인 방송 패러다임에 적합한 사업자인지의 여부도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이다.

논란을 빚고 있는 디지털방송 전송방식 문제도 차일피일 미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미 시험방송이 시작됐다. 방송계 일부에서 지적하고 있는 미국의 ATSC(Advanced TV System Committee : 첨단텔레비전방식위원회) 방식의 문제점 지적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이동수신에 어려움이 있고 휴대 및 실내수신에 맹점을 드러내고 있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매우 크다. DVB-T(Digital Video Territorial Broadcast) : 디지털영상 지상파방송) 방식보다 결코 낫지 않다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산업적인 측면이다. 단순히 지상파방송의 디지털화 추세라는 세계적인 방송 패러다임에 편승하는 것이라면 서두를 일이 아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무려 20여년이 지난 81년에야 비로소 컬러TV방송을 시작했다.

디지털방송을 접어두고 디지털TV 등 디지털 제품을 수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 한국산 컬러TV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으로부터 무차별적인 보복관세에 시달려 왔다. 공세의 주된 배경은 한국이 컬러TV를 방영하지도 않으면서 컬러TV를 생산·수출한다는 것이었다. 컬러TV가 수출전선에서 효자노릇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반도체산업과 정보통신산업은 존재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우리로서는 늘 산업의 패러다임을 「생존」의 방편으로 활용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조5000억원에 달하는 디지털방송을 위한 천문학적인 재원이 단지 문화적 향유와 고급화를 위해 조달된다면 투자 우선순위는 바뀌어야 한다.

위성방송도 마찬가지다. 문화의 다원화라는 메리트 외에 양질의 콘텐츠 생산, 고용창출이란 파급효과가 전제돼야 한다.

언필칭 디지털방송 전송방식 채택과 위성방송사업자 선정은 이같은 우리의 「생존」이란 절체절명의 시대적 소명아래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정부가 나름대로 장고중인 것도 바로 이 때문으로 보인다. 예컨대 미국시장을 떼놓고 세계시장을 제패할 수는 없다는 판단인 것이다. 더욱이 이 시점에서 전송방식을 바꿀 경우 세계시장 진입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위성방송을 포함한 디지털방송은 문화·산업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화질과 음질뿐만 아니라 양방향 커뮤니케이션과 컴퓨터·인터넷을 결합함으로써 지식의 총아로 자리잡을 게 확실하다. 지역간·계층간 빚어질 수 있는 정보불평등 문제도 희석시키는 등 사회적인 순기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 시점에 중요한 것은 나무뿐 아니라 숲을 바라보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방송계의 혼란스러움은 어쩌면 숲을 바라보기 위한 진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통은 산고를 위한 아픔으로 그쳐야 한다. 서로 찢고 헤쳐선 안된다. 자칫 그러다가 기대밖의 낭패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무만 바라본 채 돌이킬 수 없는 흠집을 만들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