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특허전쟁시대 살길

윤원창 부국장대우 경제과학부장 wcyoon@etnews.co.kr

기술력이 기업은 물론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의 기본이 기술력이라는 전문가들도 있을 정도다. 정치 우방은 있어도 경제 우방이나 기술 우방은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선진국들이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기술입국의 기치를 들고 독자적 정책을 세우는 등 심혈을 기울이면서 소위 「기술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요즘 국가의 부는 인터넷·정보통신·컴퓨터·생명공학·초전도기술 등 지식을 기반으로 한 첨단기술분야에서 창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조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돈, 수백만의 일자리, 정치·경제적 영향력은 모두 과거처럼 천연자원이나 공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에서 비롯되고 있다. 때문에 지식업종의 세계시장 선점경쟁도 기술력으로 승패가 결정되고 있다. 그만큼 최근 아이디어와 발명에 대해 특허권을 얻는 것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광업권이나 전매권을 취득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특히 핵심기술이 전략특허나 국제표준 규격화되면서 선진국 업체들은 아예 핵심기술을 사업수단화하고 있는 추세다. 한마디로 특허를 무기로 후발업체의 진입을 봉쇄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른바 「비즈니스모델(BM)」 특허가 대표적인 예다. 주로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영업방식이나 사업 아이디어를 특허로 보호하는 BM특허는 종전의 전통적 특허개념을 뛰어넘어 비즈니스 아이디어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무기로 하는 인터넷 비즈니스의 특성상 BM특허는 후발 사업자에게 발붙일 여지를 거의 없애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인터넷업계에서 BM특허 보유는 사업성공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시장에 발을 내밀기도 어려우며 진입했다 하더라도 기술종속과 로열티 부담으로 악전고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가운데 그간 해외업체의 특허공세에 수세적인 위치에 몰렸던 국내 전자·정보통신업계가 최근 해외업체들을 대상으로 「특허 대반격」에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현대전자가 최근 램버스사를 상대로 특허무효 소송을 신청했고 LG전자는 미국과 타이완의 5개 PC업체를 대상으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LG전자가 무기로 내세운 특허기술은 컴퓨터 관련 기술표준에 해당하는 「PCI버스(정보전달 통로규격)」에 적용되는 기술 등 200여개로 컴퓨터 제조에 필수적인 것이다.

우선 결과를 차치하고라도 선진 업체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특허공세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국내 업체들이 예전과 달리 이제 반대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내 업체들이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에다 이에 근거한 공격형 특허관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양적으로 상대방과 대적할 만한 특허건수를 갖추고 여기에 글로벌 특허관리시스템 구축, 특허지도(patent map) 체계화 등을 미리부터 준비해온 것이 한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특허는 기업경쟁의 「창」으로 비유된다. 그만큼 특허공세는 경쟁기업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모토로라 등 미국의 통신장비업체들이 최근 국내 CDMA방식 휴대폰업체들에 로열티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가 휴대폰 생산대국으로 무섭게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을 다소나마 약화시켜 보자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특허공세가 기업경쟁의 「창」이라면 크로스라이선스(cross license)는 「방패」라 할 수 있다. 크로스라이선스는 자사 특허 중 상대가 꼭 필요로 하는 특허와 상대방의 특허를 맞바꾸는 일종의 특허교환이다. 선진국의 특허공세에 대비해 국내 기업들이 요즘 신경쓰기 시작한 다특허 전략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특허협상에서 특허권의 절대량이 모자라 쩔쩔매던 데서 벗어나 보자는 현실적 선택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시대 특허경쟁에서 일방적으로 선진업체에 밀리던 국내업체들이 디지털 시대만큼은 자신있다고 말한다. 물론 최근 국내업체들이 개발한 전자·정보통신 각 분야의 기술은 속속 세계표준으로 인정받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특허전쟁에 대비한 국내업계의 실정은 아직 열악한 형편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율은 선진국의 30∼50% 수준이고 특허개발이나 관리를 위한 종합적인 인프라 구축도 아직 미흡하다. 10만여 제조업체 중 1%에도 못 미치는 900여 업체만 특허관리 전담부서를 두고 있는 현실이 이같은 문제점을 반영한다. 국제특허분쟁 발생때 적절한 대응을 못해 큰 손해를 입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기존 산업이 소프트화·지식화돼가고 지적재산권이 주요 교역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는 오늘의 특허전쟁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지적재산권으로 재무장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