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실패까지도 재산인 이유

김경묵 인터넷부장 kmkim@etnews.co.kr

자금흐름이 원활했던 올초만 해도 인터넷비즈니스의 선순환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풍부한 투자자금에 힘입어 회원을 모으고 이 커뮤니티를 통해 상거래를 활성화시켜 수확체증의 법칙에 돌입한다는 것이 이 공식의 요체다.

인터넷비즈니스의 바이블처럼 여겨졌던 선순환공식은 투자경색으로 한순간 깨졌고 요즘은 악순환 그 자체다. 무엇보다 닷컴업체들의 젖줄역할을 했던 창투사와 엔젤 등 벤처투자자들의 상황이 코스닥시장 침체로 말이 아니다. 머니게인은 물론이고 원금회수까지 불가능해질 수 있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신규투자에 보수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묻지마 분위기는 언제든지 극으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묻지마 투자」가 아직 「묻지마 회수」 분위기로까지 비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장담할 순 없다.

많은 이들이 현재의 상황을 과열의 후유증으로, 생존터널을 지나는 국면으로 규정한다. 이 말에는 이 터널만 지난면 좋은 날이 온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경기의 순환법칙을 감안할 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문제는 경쟁력 있는 업체들이 쓰러지기 전에 얼마나 빨리 이 국면을 타개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선 먼저 현재의 경색분위기를 가져온 돈가뭄의 해소가 언제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차분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기관이 주최한 공청회 등에 참석해 보면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돈을 푸는 시점과 방법이 문제다』라는 정책담당자들의 얘기를 곧잘 듣곤 한다. 실제로 정부가 운영하는 연기금 규모만도 2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어차피 우리나라 경제구조상 이 돈을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로만 연기금을 운영할 순 없다. 투자를 통한 두자릿수 이상의 수익창출만이 원활한 연기금 운영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미국 신경제를 일으킨 사실상의 총알이 연기금이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경우 연기금의 최고 50% 이상을 벤처에 투자한 경험을 갖고 있다. 미국의 예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돈가뭄이 결국 유행병처럼 왔다갔다 하는 벤처투자자들의 허약한 투자여력과 마인드가 문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기금의 벤처시장 투입은 총알확보 측면에서 뿐 아니라 공신력 확보를 통한 분위기 일신에 특효약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이번 닷컴위기론의 주원인은 코스닥을 비롯한 시장에서 닷컴업체들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기대만큼 컸던 실망이 가져온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비록 그것이 시장형성 초기단계에서 나온 투자자들의 조급증에 기인한다해도 수익모델의 벽을 돌파하지 못하는 닷컴 비즈니스에 대한 일반인들의 실망은 대단히 컸다.

이 시점에서 급선무는 시장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이는 연기금 활용 등을 통한 정부의 개입으로만 얻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시장과 괴리되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과 여기에 걸맞은 CEO마인드는 무엇보다 필요한 덕목이다.

그간 닷컴업체의 CEO들이 범한 가장 큰 실수는 시장과의 괴리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의 아이디어로 시장을 자신이 리드할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이 자만심이 업무추진의 동력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냉엄한 시장논리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수요가 없는 그럴듯한 비즈니스 모델이 시행착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수요를 모두 온라인으로 끌어오기가 불가능하다면 수요를 찾아 오프라인으로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온오프라인의 시너지는 바로 고객만족과 수요창출이라는 시장원리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오프라인 기업 역시 현재의 상황을 온라인의 위기내지 항복 분위기로 몰아가서는 안된다. 현재 오프라인이 시장의 본체역할을 하고 있다면 이 본체를 움직이는 엔진은 인터넷, 즉 닷컴업체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같은 측면을 감안할 때 M&A는 분명 업계 자발적인 타개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쟁력 있는 온오프라인 기업간 결합은 시장신뢰 회복을 위한 구조조정효과와 함께 돈가뭄 해소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묘책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우리 인터넷업계는 닥칠 모든 문제를 경험하고 실제 그 문제속에서 생존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사라질 수 있지만, 그것은 자연스런 경쟁의 논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터넷업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기업성장의 과정상에서 야기되는 문제라는 얘기다. 닷컴업체에 실패가 자산인 이유는 대기업에 비해 잃을 것이 별로 없어서라기보다는 한번 행한 시행착오를 다시는 행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김경묵 인터넷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