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테헤란밸리와 실리콘밸리의 차이

이윤재 이지털경제부장 (yilee@etnews.co.kr)

벤처의 요람, 실리콘밸리도 요즘 곳곳에서 된서리가 내리고 있는 모양이다. 주가하락에 이은 폐업·감축·매각 등 몸살을 앓고 있는 벤처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인터넷서비스로 요약되는 닷컴기업이 주로 살생부에 올라 있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이러한 분위기는 또 별다른 여과없이 서울로 전해지면서 테헤란밸리에 더욱 불안한 시선이 던져지고 있다. 『실리콘밸리마저…』라는 탄식과 함께 닷컴거품론과 한계론을 더욱 확신케 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생존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국내 벤처기업들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과 실리콘밸리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알려진대로 실리콘밸리에는 최근들어 문닫는 닷컴기업이 줄을 잇고 있지만, 그것이 벤처업계에 미치는 파장은 미미하다. 벤처기업을 둘러싼 투자와 지원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은 언제든지 감원이나 매각, 심지어 파산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와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점이 테헤란밸리와 다르다.

우선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은 투자대상 기업선정에 대단히 엄격하다. 그 중에서도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인력(팀)과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시장성, 차별화된 기술과 제품력, 파트너십 등 5가지 요소는 심사의 핵심 포인트다. 우리나라처럼 재무제표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단 투자를 단행하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네트워크를 통해 다각적인 지원을 펼친다. 대체로 집중적인 투자와 지원을 통해 단기간에 승부를 낸다. 승산이 없어 보이면 과감하게 손을 빼는 것도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의 특성이다. 또 10개 투자기업 중 1개만 성공해도 투자수익(캐피털게인)을 올릴 수 있다. 따라서 한두개 투자기업이 문을 닫는다 해도 큰 손실을 입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투자재원(펀드)을 조성할 때 우리나라처럼 개미군단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자금력이 충분한 투자자들을 모아 펀드를 결성함으로써 투자기업의 도산에도 큰 충격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 또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다.

지금 실리콘밸리가 인터넷서비스 중심의 닷컴기업 도산이 잇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기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은 인터넷인프라·광대역·무선네트워크 등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유망 비즈니스 모델이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테헤란밸리는 어떤가. 여기저기 닷컴기업에 돈이 물려 불안해 하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고 추가 펀딩이 안돼 전전긍긍하는 벤처기업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문닫는 닷컴기업은 없다. 끝까지 버텨보자는 식이다.

우리나라 벤처기업, 특히 닷컴기업 중에는 벤처캐피털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 보다는 인터넷 공모나 친인척 등 주변 지인의 돈을 끌어모아 회사를 설립, 운영하는 곳이 많다. 그러다 보니 수익을 내지 못한다고 해서 회사 문을 닫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쏟아질 비난을 감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테헤란밸리가 실리콘밸리처럼 스스로 솎아내기의 거센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거듭나지 못하는 이유다. 또 테헤란밸리가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수익모델을 창출하기가 어렵다면 과감하게 문을 닫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탄탄한 기술력을 쌓는 데 주력해야 한다.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서는 몸 전체가 곪아버리기 때문이다.

테헤란밸리 벤처기업들은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닷컴 도산이 결코 벤처업계 또는 벤처산업의 하향곡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실리콘밸리의 분위기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윤재 디지털경제부장 yj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