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노벨상 수상 이후

모인 문화산업부장

가을 걷이가 한창이다. 탈곡을 마치고 묶여진 볏집들이 하나둘씩 들녘에 드러누워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효자태풍 덕에 올해의 농사는 풍년이라는 소식이다. 농부들의 땀과 일년내내 졸였을 그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퍽 다행이다 싶다.

깊어가는 가을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또 다른 반가운 소식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을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13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의 발표였다.

노벨위원회 군나 베르게 위원장은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가진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동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에 크게 기여한 김 대통령을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호명했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특히 그는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남북의 긴장 완화와 대화국면 조성에 기폭제가 되었다』며 김 대통령의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1913년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아시아권 최초의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아시아지역에선 모두 22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김 대통령의 이번 노벨상 수상은 그러니까 23번째가 되는 셈이다. 더욱이 노벨상의 꽃이라고 불리는 평화상 수상자가 아시아존에서는 겨우 7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비추어 보면 이번 평화상 수상의 의미는 남다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밀레니엄 첫해에 한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매우 상서로운 조짐이다. 어찌보면 국력이 그만큼 신장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김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대외 신인도가 크게 개선될 것이란 기대감을 표시하는 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안팎의 경제 사정은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로 유가는 다시 폭등하고 있으며 주가는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하강하고 있다. 내수경기는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원화의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대우사태는 새 국면을 맞고 있으나 여전히 미궁 속이며 퇴출소식으로 기업활동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일각에서는 제2의 IMF사태를 겪는 게 아니냐는 비관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김 대통령이 관심을 표명해 온 문화·산업계의 사정도 엇비슷하다. 영화와 게임을 제외한 산업계가 수요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자금 인프라 역할을 해 온 비디오업계는 지금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음반업계는 판매 양극화 현상으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지경이라고 아우성들이다. 잘 나간다는 게임업계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영세업체들은 곤욕을 치르고 있으며 인터넷방송업계는 싹도 피워보지 못한 채 구조조정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문화예술계는 기업들의 협찬 외면으로 살림살이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콘텐츠의 핵인 우리 영화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것과 올해의 정부 문화예산이 1조원을 넘어섰다는 점 뿐이다.

경제와 문화산업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경제가 어려우면 문화산업은 먼저 등이 굽고 반대로 경제에 신바람이 일면 문화산업은 향내를 피운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업계가 엔터테인먼트산업을 「포켓머니산업」으로 비유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화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문화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먼저 경제를 살려 놓은 대통령이란 소리를 들어야 한다. 경제를 꽃피우지 않고서는 문화를 향유할 수 없다.

거친 비바람과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이겨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현재의 위기 상황이 열매를 맺기 위한 진통이라면 이를 견뎌내는 인내와 지혜로움, 용기가 있어야 한다.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어찌 보면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는 걸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김 대통령이 문화대통령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