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사이버 무역시대

윤원창 부국장대우 경제과학부장 wcyoon@etnews.co.kr

선진국들이 무역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기울이는 정성은 남다르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들이 전세계 통상과 무역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은 부러울 정도로 잘 정비된 인프라에서 비롯되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역인프라를 확충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선진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됐다는 것 뿐이다. 그동안 무역인프라 관련 사업은 법적 근거도 없이 예산 사업으로만 수행돼 왔다.

곰곰히 따져보면 현재 무역인프라 구축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은 산더미 같다. 그중에서도 현실적으로 무역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게 하려면 무엇보다 정책이 급변하는 단점을 제거하고 일관된 정책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특히 무역기반은 시장기능에만 맡겨서는 공급될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의지를 표현해야하는 법적 기반 마련이 더욱 절실하다.

그렇다면 현재 무역 환경은 어떠한가. 인터넷을 매개로 하는 전자상거래의 확산으로 세계가 사이버경제체제로 급속히 이전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거래처 발굴과 함께 신용장 개설 등 모든 무역관련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음악·영화·게임·소프트웨어 등 디지털 콘텐츠의 전자이송(electronic transmission)을 통한 국제적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 이른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사이버무역(전자무역)」이 활성화되고 있다.

물론 이같은 전자상거래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무역은 세계적으로도 아직은 제한적 보조수단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의 성장세가 말해주듯이 팽창력이 엄청나 조만간 국제교역의 중추 수단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인터넷거래 알선 사이트를 통한 수출성사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1999년에는 전체 수출의 8.8%에 불과했지만 올해에는 18.7%에 이를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사이버무역은 우리 중소수출기업에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21억달러 수준이던 국내 사이버무역 규모가 2003년에는 무려 96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정부가 국제적으로 무관세가 적용되고 있는 디지털 콘텐츠의 온라인거래를 「무역」으로 정식 인정하고 일반 무역에 「전자무역」의 개념을 도입, 사이버무역을 적극적으로 촉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대외무역법」 개정안을 마련, 국회에 상정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사이버무역에 대한 정의나 이에 대한 지원제도가 확립돼 있지 않은 가운데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전자무역을 법적으로 정의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평가할 만하다. 또 무역절차에서 인터넷무역과 무역자동화 등을 활성화시키고 이를 위해 전자무역중개기관을 도입한 것은 중소기업을 비롯한 수출저변 확대 차원에서 시의 적절하며 전반적인 무역 촉진까지 기대된다.

하지만 사이버무역이 실질적으로 촉진되기에는 이 개정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이버무역을 촉진하는 개정안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각종 관련 법령의 개정도 함께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외무역법상 물품의 수출입 대금 지급영수제한 면제조항에 디지털 콘텐츠의 온라인 거래도 포함할 수 있도록 외국환거래법 관련조항의 수정이 필요하다. 또 한국은행의 무역금융취급세칙도 디지털 온라인거래 실적을 인정해 주도록 해야 한다.

뿐만이 아니다. 관련 인프라 정비도 긴요하다. 사이버공간에서의 거래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인터넷 무역사기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도 필요하며, 중요 결재서류 보안과 인증기술의 발전도 수반돼야 한다.

이번 대외무역법 개정안은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해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새 천년을 사이버무역시대」로 규정하며 관련 대책의 적극 추진을 천명한 이후 거의 1년 만에 나온 것이다. 국회에서 또 얼마나 끌지 모른다. 세계 무역환경은 촌각을 다툴 정도로 급변하고 있는데 관련 법규 마련은 거북이 걸음이다.

무역대국을 지향하고 이와 동시에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을 꿈꾸는 우리나라로서는 관련 법규의 신속한 제·개정과 함께 아울러 주요 인프라의 내실있는 정비가 급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번 국회에서 이번 대외무역법 개정안의 신속한 처리가 절실하다. 아울러 관련 인프라 정비도 신속히 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에서 촉구하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