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위기 경제의 교훈

우리 경제가 심상치 않다. 내수 경기 침체로 생산 활동은 크게 위축되고 있으며 시설 투자 역시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국제 유가는 계속 요동을 치고 있고 원화의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현대와 대우의 사태는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안기고 있다.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어쩌면 또다시 벼랑끝에 서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경제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다름아닌 IMF체제 이후 잠시 흉내만 내 온 재벌들의 「몸집 부풀리기」가 재현됐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자기 계열사만을 육성하려 들었고 손익보다는 매출확대에만 더 열을 올려 왔다. 아웃소싱은 말뿐이었고 내부자 거래는 IMF 이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유동성에 덜미를 잡힐 수밖에 없는 기업구조를 그대로 떠안고 있었던 셈이다.

사실 규모에는 차이가 나지만 이른바 대기업의 「백화점식 경영」에 뒤지지 않는 분야를 꼽는다면 엔터테인먼트업계일 것이다. 이를테면 영화사업을 하면 비디오·음반·게임시장을 기웃거리는 식이다. 주력사업이 아니면서도 아웃소싱에 인색하고 생산에서 유통까지의 전과정을 도맡아야만 비로소 숨을 돌릴 정도다. 지금도 영상업계에서 알아주는 모기업이 디자인 외주비가 아깝다며 디자인 회사를 직접 경영한 사례는 유명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업계 이야기는 IMF 체제 이전의 일들이다. 한겨울 바람만큼이나 혹독한 IMF를 겪으면서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다.

감량 경영과 아웃소싱은 기본이고 손익이 나지 않는 사업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유동성 자금이 부족하면 사업 계획은 무기한 연기된다. 이른바 종합엔터테인먼트사를 지향하는 기업들마저 문어발식 경영에는 난색을 표한다. 외자유치란 기회가 주어지면 생사를 걸고 달려든다.

최근 화제의 영화 「공동경비구역(JSA)」과 「단적비연수」로 연일 주가를 올리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의 변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회사는 지난 95년 스필버그 감독과 합작으로 미국에 「드림웍스」란 영화사를 세우면서 영화사업을 시작했다. 첫 작품은 「인샬라」.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인 20억원의 제작비가 투여된 이 작품은 그러나 흥행에는 참패를 맛보아야 했다. 그 이후 제작된 「산부인과」 「억수탕」 등도 역시 관객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IMF가 터지자 이 회사는 영상사업 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리고 자체 제작보다는 아웃소싱에 주력했고 한편으로는 사업성을 철저히 따져 묻기 시작했다.

「단적비연수」와 「공동경비구역」은 그같은 노력의 결실이었다. 이 회사는 앞으로도 「사업성」이 떨어지면 손도 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IMF체제는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감내하도록 요구했다. 구조조정과 기업퇴출로 인해 우리의 가장들은 길거리로 내몰렸고 허리띠를 졸라 매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우리 가정의 가계를 압박했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한 것은 IMF 체제를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 보려는 국민적 여망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의 현대와 대우의 사태는 유동성과 부실 경영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모럴 헤저드에 의한 결과로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그들에게 우리 경제에 안긴 충격과 손실에 대한 책임을 어떤 식으로든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변해야 한다. 신경제에선 더이상의 「선단식」 경영이 있어선 안된다. 특히 경제의 중심축에 있는 기업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참담하다.

세계 경제는 지금 조정기를 맞고 있다. 민간 소비는 하루가 다르게 감소하고 있다. 경기하강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미 불황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적지 않다.

엔터테인먼트업계의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이 못내 씁쓸할지 몰라도 우리 경제를 살리는 일이라면 「딴따라」들의 변신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