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다시 시작하는 12월

고은미 기획조사부장 emko@etnews.co.kr

12월이다. 벌써 1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할 요즘, 왠지 마음이 무겁고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은 시험지를 앞둔 학생처럼 초조하기만 하다. 올해초만 해도 우리 경제의 꿈이었던 닷컴과 벤처기업은 이제 위기론을 넘어 몰락론마저 나오고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라고 몇몇 사이비 벤처인 때문에 연일 나라가 시끄럽다.

경제는 어렵다고 난리고 구조조정과 노사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으며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선다는 수치 앞에선 추운 날씨가 더 춥기만 하다. 언제나 시작은 설레고 끝은 아쉽게 마련이지만, 새천년 시작이 우렁차서 그런지 올 연말은 유난히 더 우울한 기운이 주위를 감돈다.

이 모든 게 허망한 꿈만 안겨준 인터넷 탓인 양 닷컴 기업인들은 더 움츠러들고 있다. 1년도 못되는 짧은 시간에 극단적인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닷컴과 벤처인들은 일견 억울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외에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올 한해, 인터넷과 IT기술은 성큼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양적으로도 이제 휴대폰 이용자 2600만명, 인터넷인구 1900만명, 무선 인터넷이용자 1000만명인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한번이라도 인터넷을 이용해 본 사람은 인구 2명당 한명꼴인 셈이다.

물론 인터넷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우리의 라이프스타일도 변화시켰다. 이제 e메일은 생활화되었으며 온라인 커뮤니티 모임은 오프라인의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안과 지불수단을 걱정하면서도 온라인 쇼핑은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서점의 매출은 늘었고, 외국과 지방에 있는 친지나 지인들과 전화를 할 때 인터넷폰도 심심찮게 이용하고 있다. 학창시절 친구찾기를 비즈니스 모델로 내세운 사이트를 통해서는 인터넷이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공간이라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렇게 새로운 물결이 우리 생활로 흘러들어오기까지는 지금 애꿎게 돌을 맞고 있는, 밤잠 못자며 신기술과 싸운 벤처인들의 노력을 무시할 수가 없다. 벤처인들은 평범한 직장인들이 근로기준법을 들먹이며 근무시간을 따지고 들 때 하루 20시간씩 컴퓨터에 매달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최근 결혼정보회사 조사결과 신랑감 순위 꼴찌라는 벤처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빠져 열정적으로 일한다. 도덕적 해이로 욕먹는 일부 벤처인을 제외하고는 그들 대부분이 오늘도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이 바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고, 꿈으로만 보이는 기술을 실현시킨 사람들이다.

그들이 밤잠 설치며 이룬 모험의 결과를 우리 모두는 편히 같이 나누는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을 편리하게 마음대로 사용하게 되기까지 그들이 남몰래 흘린 눈물이 얼마일 것이며, 숨어있는 노력과 기술이 얼마나 될지 상상이나 해보았는가. 그래서 요즘 이 추운 밤, 겨울잠을 설치며 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을 보내고 싶다.

빛의 속도로 변해야 한다는 속도의 시대지만 이제 인터넷도 좀더 긴 안목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할 것 같다. 마라토너들은 결승지점 앞에서 너무나 고통스럽고 고독하다고 한다. 지금 닷컴 기업인들의 이야기인지 모른다. 여지껏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달려 왔는데 이제 고지를 앞에 두고 포기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한 걸음. 힘을 내서 한 걸음 더 발을 내디뎌 보자. 그러면 한 차원 다른 비즈니스 세계가 열릴 것이다.

이 고통의 겨울을 넘기는 자들에게는 꽃피는 봄이 올 것이다. 천근의 무게로 짓누르는 고달픈 몸을 이끌고 계속해서 꿈을 좇아 보자. 언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씨앗에서도 싹은 피어날 것이다.

인터넷의 수혜자는 그것을 편리하게 이용하는 우리 일반 이용자들이다. 벤처인의 꿈이 계속되길 바라자. 그들은 우리에게 꿈을 주는 사람들이다. 보들레르의 시처럼 「꿈을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꿈을 주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꿈이 없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앞으로도 IT분야의 진보가 계속될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들 모두 이견이 없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도 스스로 검증해 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의 앞날은 나름대로 연구하고 분석하면서 대비하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 현재가 힘들고 어려울수록 앞날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갖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