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디지털경제 논쟁

이윤재 디지털경제부장 yjlee@etnews.co.kr

새 천년의 첫 해가 저물어간다. 새로운 희망과 다짐으로 출발해, 말그대로 다사다난(多事多難)한 좌절과 기대를 거듭하며 그 첫장을 넘기려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코스닥 폭락과 닷컴 재조명으로 인해 화두로 올라선 디지털경제에 대한 논란은 미결사안으로 해를 넘기게 됐다. 불과 1년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코스닥 시장과 벤처업계가 「디지털경제」라는 새로운 희망의 용어를 탄생시켰으며 이제는 이 디지털경제 자체가 도마위에 올라있는 것이다.

디지털경제는 일반 대중에게는 아직도 낯익지 않고, 또 사실 그 실체도 명확히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경제시스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융자 중심의 금융환경에 출자 바람을 일으키면서 금융시스템이 급변했으며 개별 기업에는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방식의 다양화와 집중화를 유도하는 등 기존 경제구도와는 다른 개념을 형성했다.

그리고 또, 디지털경제의 등장을 가능케 한 근본적인 코어는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이와 관련한 비즈니스가 속속 출현, 닷컴열풍을 몰고 왔으며 벤처기업들이 코스닥 시장을 점령하는 기폭제가 됐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의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는 주가폭등 외에도 기업들이 높은 은행 문을 몇 차례씩 두드려야 하는 융자관행의 뿌리를 흔들어 놓았다. 미래가치라는 것이 부동산처럼 현실적인 담보물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융자의 개념속에서는 적용 불가능하지만 투자 대상으로는 각광을 받았다. 또 기업들은 인터넷의 도입을 통해 경영시스템을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변화시키면서 디지털경제를 형성하는 주요 주체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코스닥 폭락과 유동성 부족, 닷컴기업의 수익성 부재 등 디지털경제를 잉태시킨 요소들이 악재로 드러나면서 디지털경제의 실체가 무엇이냐 하는 식의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오프라인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이들은 실체도 분명치 않은 디지털경제를 내세워 우리경제를 혼돈속으로 몰아넣었다고 질타하기도 한다. 상당 부분 옳은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지난 세기에 세계경제를 석권한 일본의 움직임은 어떤가. 일본은 분명 산업경제 시대의 승자였다. 그런 일본이 21세기 첫 해를 어떻게 보냈는가는, 우리에게는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디지털경제에 대해 보다 확실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의 모리 총리는 지난 7월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회장을 의장으로 한 「IT전략회의」를 구성한 데 이어 지난 9월말에는 국회연설을 통해 앞으로 5년내에 미국을 추월하는 세계 최강의 인터넷 대국을 건설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리고 지난달초 일본정부는 「IT일본」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앞으로 5년내 적어도 3000만 세대에 고속인터넷망을, 그리고 1000만 세대에는 전송속도 30∼100Mbps의 초고속인터넷망을 상시 접속 가능한 상태로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즉 인구의 절반이 고속인터넷망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대기업이 선봉에 선 전자결재시스템의 도입확대를 통한 전자상거래 활성화, 중앙부처의 94%를 온라인으로 연결(2003년)하는 전자정부 실현, 각급 학교를 고속인터넷으로 무장한 IT인재 집중 육성 등 4대 목표를 제시하고 관련부처가 발을 걷어붙였다.

사실 일본은 지금, 미국을 상대로 디지털 전쟁을 선포했지만 이웃 한국의 디지털화에 긴장하고 있다. 인터넷 이용현황이나 발전속도에서부터 인프라 구축, 기업의 디지털화 등 디지털 경제환경에 대해 한국과 자주 비교하고 분발을 촉구한다. 과거 산업화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대목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일본의 경우가 디지털 경제논쟁의 정답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주도세력들이 이미 디지털 경제전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피할 수 없는 싸움터다. 이제 디지털 경제를 놓고 더 이상의 논쟁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