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욱 생활전자부장 swyang@etnews.co.kr
모진 한파와 폭설 속에서 다시 벤처의 싹이 움트고 있다. 코스닥시장이 모처럼만에 웃음을 되찾았으며 이에 힘입어 벤처투자도 기지개를 활짝 펴고 있다. 특히 올들어 잇따라 성사되고 있는 대형 M&A는 다시 벤처인들에게 꿈과 희망, 벤처의 생명인 모험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기침체의 원인이 닷컴을 비롯한 벤처에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어도 일부 벤처인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이를 그대로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신년을 맞아 반전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일부에 의해 벤처정신이 훼손됐지만 아직도 꿈과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벤처인들이 있기에 벤처는 우리 경제의 희망이다. 이제 한 벤처인의 모습에서 우리의 희망을 찾아보자.
그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떠나 벤처의 나래를 편 지 만 3년이 지났다. 대기업에서 잘 나가던 그에게도 창업의 길은 남들처럼 멀고 험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이 하지 못한 일을 한다는, 그래서 한국인의 기상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엔지니어로서의 자신감은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처음 4명으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 간다는 자부심으로 밤낮을 잊고 기술개발에 몰두했다. 천운이 따라서인지 벤처붐이 일고 그도 다른 벤처들과 마찬가지로 투자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돈을 주겠다는 수많은 투자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투기성이 짙은 국내 엔젤보다는 자신의 기술을 인정하고 이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외국투자벤처로 눈을 돌렸다. 그가 수천만달러에 이르는 외국 투자자본을 유치했을때 그는 막대한 기술개발 자금을 확보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가는 길이 옳다는 것을 입증받았다는 데서 더 큰 기쁨을 맛보았다고 토로했다. 물론 막대한 외국자본을 유치하면서 테헤란밸리의 스타로 떠올랐음은 물론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몰아닥친 된서리 속에서 수많은 벤처가 사라지고 일부 벤처인들의 모랄헤저드로 인해 벤처의 생명선인 자금줄이 묶였어도 그가 별무리없이 지금까지 사업을 영위해온 것도 사실 이같은 막대한 자금을 미리 확보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이 올들어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꾸고 있지만 가장 성공적인 벤처경영자로 꼽히고 있는 그는 경영인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직접적인 이유는 그가 개발한 제품이 자타가 세계 최고의 제품이라고 공인받고 있지만 막상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큰 호응을 얻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는 아직까지 제품을 사용할만한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를 위로하지만 그에게는 질책일 수밖에 없다.
지난 3년간의 경험에서 단순한 엔지니어가 아닌 한 기업의 경영인은 제품개발에서 시장상황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모든 잘못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안아야한다는 것을 깨달을 만큼 성숙했다. 그렇지만 그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한 것은 창업 3년이나 지난 지금도 소비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지 못했다는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이 무참하게 무너져내린 것이었다. 「나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무너졌다는 것은 이제 벤처인으로서는 마지막 과정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벤처 3년. 한때 가장 성공한 벤처인으로 꼽혔던 그는 아직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된 집 한채 없다. 코스닥등록으로 수천억원을 벌었다는 자신의 동료나 후배들과는 다른 길을 간다고 믿었다. 성공한 벤처인들의 모임에서는 돈될 수 있는 사업아이템으로 바꾸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 법인이름으로 골프장 회원권을 1장 구입한 게 사장으로서 최대 호사였다고 토로하는 그의 눈가는 어느새 발갛게 물들었다.
그렇지만 회사 임직원들이나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외국인 회사는 아직도 그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것이 현재로서는 최고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믿고 힘이 되고 있는 주변사람들에게 이 말만은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섣부른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다가서려했던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또 창업당시의 심정으로 돌아가 우리나라 IT산업에 새로운 지평을 열 제품을 개발하는데 다시 한번 열정을 쏟아내겠다고.
새해들어 다시 지펴지는 벤처의 불꽃에 우리가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 주위에 그처럼 순수하게 벤처정신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벤처인들이 많기
때문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