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크스라인> 살얼음판 곡예

이윤재 디지털경제부장 yjlee@etnews.co.kr

알 듯 모를 듯한 주가상승이 새해 들어 거의 한달동안 계속되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경제환경이 급격히 바뀐 것도 아니고, 경기회복을 알리는 선행지수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올해 크게 수익을 거둘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일반적인 경제논리로는 요즘과 같은 주가 오름세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볼 때에는 이해가는 부분도 없지 않다. 정부가 2월말까지 주요 개혁을 마무리하겠다고 선언한 데 투자자들이 고무됐을 수 있다. 또 올해 투자성격의 예산중 80% 정도를 상반기에 집행하는 경기부양책을 제시,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기대감을 높인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단편적인 사례일 수 있지만, 정부가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확대 의지를 밝힌 것도 요즘 닷컴주들이 특별한 호재없이 급상승하는 이유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주가상승이 의미하는 것처럼, 과연 장밋빛 기대를 해도 좋을까. 경제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면서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을 동시에, 그것도 조기에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의지 외에는 사실상 변한 게 없다. 경제라는 게 그렇게 갑자기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주가가 오르고 있는 것은 지난 연말까지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친 우리 증시가 경제에 대한 정부의 인식변화라는 「명분」을 다분히 얻은 탓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경제환경이나 주체들은 구조적으로 지난 연말과 달라진 게 없다. 경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이 그대로인데 투자자나 일부 기업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이것이 바로 요즘의 주가상승을 바라보면서 갖는 걱정거리다.

올들어 경쟁적으로 지면을 장식한 인터넷주를 보자. 불과 한달도 안돼서 주가가 두배 이상 올랐지만 분명한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이들 기업이 지난해 흑자를 실현한 것도 아니고, 또 새해 들어 탄탄한 수익모델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올해는 미래가치를 담보할 정도로 시장환경이 개선된 것도 아닌데 지난 99년말의 닷컴열풍처럼 주가가 뛰어오르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벤처 일번지라는 테헤란로의 분위기도 여의도(증시)를 닮아가고 있다. 한달전까지만 해도 바싹 움추려있던 벤처캐피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바닥까지 떨어진 투자배율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펀딩이 안된다고 아우성이던 벤처기업들이 이제는 숨통이 조금 트이는 것같다며 화색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벤처기업도 새삼스럽게 경쟁력을 가질 만한 「무기」를 개발한 것도 아니고, 수익이 기대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테헤란밸리에 흥청망청의 기운마저 감돌고 있는 것이 걱정이다.

마치 살얼음판 위에서 줄타기 곡예를 하는 것같다. 다시는 펀딩에 의존하는 벤처비즈니스가 돼서는 안되는데. 펀딩을 하더라도 이제는 국내가 아닌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데 투자돼야할텐데. 그리고 벤처캐피털이 더 이상 한건주의식 단견투자를 말아야할 것이라는 걱정을 지울 수가 없다.

여기에 하나 덧붙여, 벤처기업들이 더 이상 「회장」 흉내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렇지 않아도 대기업을 중심으로한 기업지배구조가 정부 구조조정의 핵심사안중 하나인데 벤처기업까지 지분이 서로 얽힌 지배구조 형태를 띠거나 문어발식 기업확장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지금은 대다수의 기억속에서 잊혀졌겠지만 사실상의 우리나라 「벤처1호」가 그룹의 틀을 갖추려 하다가 결국 정경유착의 우산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퇴출된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설사 정부가 정권 차원에서 맹목적인 경기부양책을 쏟아낸다 해도 기업은, 적어도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IT기업은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도 세계시장을 겨냥한 「실력」 쌓기에 정열을 쏟아부어야 한다. 기업에는 경기부양책이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자양분으로 활용해야지 본분을 망각한 채 부화뇌동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 물론 여기에는 눈앞에 놓인 일에 급급해 군중심리를 자극하는 정부의 정책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