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닷컴기업의 향방

◆김경묵 인터넷부 부장 kmkim@etnews.co.kr

바둑을 즐겨본다. 반상의 흑백이 삼라만상의 이치를 가르쳐 준다는 현인들의 가르침 때문이 아니다. 이보다는 오히려 오묘한 수순이 가져다 주는 카타르시스탓이 크다. 어려운 국면을 절묘한 수순에 의해 타개하는 고수들의 바둑은 예술 그 자체다. 거의 열수 이상을 내다 보면서 위기에 몰린 대마의 활로를 찾고 오히려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 과정은 「삼국贅물?주는 교훈에 버금간다. 뜬금없어 보이는 바둑얘기는 최근 활로모색을 부심중인 닷컴업체들에 도움이 될까해서다.

지난해 수익모델 부재라는 장벽에 막혀 나락으로 떨어졌던 닷컴업체들이 올들어 생존을 위한 과감한 변신을 추진중이다. 닷컴기업들의 변신노력은 콘텐츠 유료화와 비즈니스 모델의 변경 등 두 축으로 대별된다. 이미 상당수의 선발 닷컴기업들이 앞다퉈 콘텐츠 유료화를 선언하고 나섰고 일부는 솔루션, 웹 에이전시, ASP 분야로 주력사업의 다각화를 공언한다. 여기에다 최근 1세대 창업주들의 퇴진도 잇따라 변화의 강도를 더해주고 있다.

이 때문인지 외형상으로는 닷컴업계가 생기를 되찾고 있는 듯 보인다. 「나홀로 직원」식의 구조조정과 사이트 폐쇄가 대세였던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일단 침체된 분위기의 반전은 희소식이다. 하지만 이같은 변신노력이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닷컴업체들의 살 길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콘텐츠 유료화 바람만 봐도 그렇다. 일견 유료화는 그간 수익모델 부재라는 오명으로부터 닷컴업체를 구출해 줄 해법처럼 여겨진다. 사용자(고객)들을 위해서도 유료화는 필수적이다.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선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시장은 이런 당위적인 요소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무료로 시작된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사용자들의 저항은 여전할 것이고 낮은 시장장벽은 콘텐츠 유료화의 발목을 잡을 것이 자명하다. 특히 저작권, 보안, 콘텐츠 관리 시스템, 과금과 지불, 법률적 문제 등 기술·제도적 기반의 미비는 단시간내에 해결되기 어렵다. 또 시장의 협소함과 치열한 시장 경쟁 구도는 고객이 돈을 주고 살 만한 콘텐츠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법과 맞물려 인터넷기업들을 곤혹스럽게 만들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비즈니스 모델 변경도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주류를 이루는 솔루션 분야로의 주력사업 이동이 성공하기 위해선 우선 해당시장에서 이니셔티브를 쥔 전문업체와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또 이 한판승부에서 이기려면 별도의 전담 인원과 투자가 필요함은 불문가지다. 기존사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작은 제2의 사업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는 이미 많은 기업들이 보여줬다. 또 다시 원점에서 빙빙 돌 공산이 크다.

이보다는 인수합병(M&A)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닷컴업체의 현안들은 M&A를 통한 구조조정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닷컴시장은 지나치게 과열된 경쟁으로 업체 난립이 심각하고 그중 대다수는 수익을 염두에 두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내수시장을 공략하자니 너무 경쟁이 심하고 세계시장을 겨냥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

M&A로 경쟁 구도를 재편하고 동종업체끼리 기술과 마케팅을 제휴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콘텐츠 유료화나 비즈니스 모델 변경들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다. 문제는 해결 수순이다. 고수들의 바둑에서 볼 수 있듯이 수순을 바꿀 경우 일을 그르칠 공산이 크다.

M&A도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다. 무엇보다 M&A를 둘러싼 국내의 법적·제도적 환경은 콘텐츠 유료화 환경만큼이나 열악하다. 설사 그렇다 해도 M&A는 인터넷업계가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다. 건강한 틀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 모델도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대안을 위해선 창업자들의 인식 전환은 필수적이다. 회사를 위해서라면 지분은 물론 대표 이사까지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근 잇따른 옥션 오혁, 야후 염진섭, 홍익인터넷 노상범, 아이러브스쿨 김영삼 대표 등의 인터넷 창업 세대의 퇴진은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한 현상으로 해석된다. 각기 퇴진의 실제이유는 다르겠지만 회사 생존과 가치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의지를 보여준 좋은 예다. 좀더 과감한 1세대 창업자들의 결단이 요구된다. 현재의 사업을 조금만 버티면 코스닥까지 갈 수 있다는 환상을 아직도 갖고 있다면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어쭙지 않은 해법으로 독자적 생존을 하려다 함께 죽는 것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공생의 길을 적극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수순 착오로 망쳐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