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e저팬」이 시사하는 것

◆금기현 IT산업부장 khkum@etnews.co.kr

한국 정보산업계 주요 인사들이 지난주 일본 도쿄의 후지쯔와 가와사키 공장에서 일본 정보화 현장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우리나라 곽치영 의원을 비롯해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 3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정보산업연합회와 한국후지쯔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 행사는 올해로 3회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번째로 이 행사에 참여한 나로선 사실 별로 기대할 게 없었다. 후지쯔의 경영현황과 전략은 다 아는 얘기고 그 내용도 지난해와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날 눈에 띄는 정보를 접하게 됐다. 그것은 바로 「e재팬 전략」이다. 물론 이를 발표한 사람이 후지쯔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아키쿠사 나오유키 사장이라는 점이라는 있지만 보다 놀라운 것은 그 내용이었다.

그는 인사말을 통해 일본이 5년 이내 세계 최대의 정보기술(IT)강국을 만든다는 전략아래 정부차원에서 「e재팬」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세계정보화 경쟁에 대응해 재계와 정부가 손잡고 e재팬을 실현함으로써 세계 1위의 IT국가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아키쿠사가 우리나라의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 놓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 e재팬의 비전을 제시한 것은 의외였다. 자신과 상관없는 얘기를 잘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의 속성을 생각할 때 다소 의아했다. 그러나 그가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가면서 e재팬 계획을 얘기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아키코사 사장이 이를 추진하는 추진본부의 한 멤버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e재팬 계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가 참고로 해야 할 내용이 많다. 일본은 e재팬 계획을 통해 △모든 국민이 IT의 장점을 향유할 수 있는 사회 △경제개혁 추진과 산업경쟁력 강화가 실현되는 사회 △쾌적한 국민생활과 개성이 풍부하고 활력이 넘치는 지역사회가 실현되는 사회 △고도정보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사회를 만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네트워크 구축, 전문인력 양성, 전자상거래촉진, 공공분야의 정보화 등 추진전략을 수립해 시행할 계획이다.

특히 5년안에 3000만 가구와 전국민의 60% 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회를 만들고, 전자상거래를 통한 거래를 확대해 2003년에 기업간 거래(B2B)와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B2C)의 시장규모가 각각 70조엔과 3조엔에 이르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일본은 이를 힘있게 추진하기 위해 모리 요시로 총리를 본부장으로 각 부처의 대신들과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회장 등 10여명의 기업인, 교수들이 참여하는 추진전략본부를 구성했다. 특히 30∼40대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워킹그룹을 구성해 실행계획을 짜고 있다.

현재 밝혀진 e재팬의 계획을 보면 그 내용은 상당히 방대하면서도 구체적이다. 겉으로 드러난 움직임도 대단히 의욕적이다. 물론 일본의 「e재팬」추진은 세계가 이미 디지털 지식혁명의 물결에 휩싸여 있음을 감안할 때 때 늦은 감도 없지 않다. 그동안 IT분야에서 미국 유럽 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경쟁을 펼쳐 온 것에 비춰 보면 늦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아키쿠사 후지쯔 사장의 자신의 찬 얘기를 듣노라면 일본의 2005의 e재팬 건설은 단순한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들이 목표로 하는 세계 최대의 IT국가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e재팬 플랜과 비교해 우리의 실정을 한번 살펴보자. 우리나라 IT산업은 세계적이다. 정보통신기기의 생산이나 수출실적을 보면 각 분야에서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기술수준도 옛날 못지 않다. 이제 웬만한 첨단 IT제품은 모두 개발하고 수출할 정도다. 특히 인터넷이용은 세계 1위다. 최근 미국 인터넷조사기관인 닐슨/넷레이팅스가 올해 1월 한국, 일본, 미국 세계 21개국의 월간 인터넷 이용시간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가 평균 16시간 17분 16초로 가장 길었다. 컴퓨터이용율이 높다는 미국(9시간 57분 36초)과 일본(7시간 56분 48초)에 비해 2배 정도 이용시간이 길다.

이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e코리아 건설」을 위한 전략은 부재나 다름없다. 정통부가 정보강국을 위한 e코리아 건설을 목표로 갖가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지만 인력양성, 기술투자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본처럼 범국가적인 차원의 마스트플랜이 아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IT정책을 추진하는 모토로 활용하고 있는 인상이 짙다. 관련부처간의 공동추진도 찾아볼 수 없다. 보다 못해 전경련이 나섰다.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정책 추진을 위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IT추진회의를 구성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아직까지 이에 대한 후속조치는 없다.

21세기는 정보강국 시대다. 국가적 정보화가 추진되지 않으면 산업과 사회의 경쟁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정보강국 e코리아가 범부처 차원에서 국가적 총력으로 추진됐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e재팬 계획이 우리나라 e코리아 추진에 참고가 됐으면 한다. 아키쿠사 후지쯔 사장처럼 자신있게 e코리아의 전략을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소개할 수 있는 우리의 기업가도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