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남벌(南伐)

◆정복남 부국장대우 정보통신부장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북벌에 대한 욕구가 무척이나 강했음을 느낀다. 우리 역사상 가장 의욕적으로 북벌을 추진한 것은 조선 17대 왕 효종이 아닌가 싶다. 효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북벌정책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볼모생활을 하며 반청 감정을 강하게 키웠던 효종은 등극하자마자 친청세력을 몰아내고 척화론자를 중용하여 북벌계획을 강력 추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21세기 초입에 들어선 현재 인터넷이 활짝 개화하고 있다. 인터넷을 인프라로 하는 온라인비즈니스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무선인터넷까지 등장해 인터넷비즈니스 환경을 더욱 공고히 하는 등 그 위력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인터넷은 산업 패러다임에 분명히 변화를 주고 있다. 과거 패러다임의 변화는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이행할 때 발생했고 이후 산업혁명 때 그리고 산업혁명 시기에 동력원을 석탄에서 전기로 전환할 때 나타났다. 인터넷은 오늘날 바로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개인이나 기업, 국가에 지금과 다른 또다른 기회를 부여한다. 이같은 변화에 제때 대응치 못할 경우 선진국이 후진국으로 또는 후진국이 선진국으로 위치가 뒤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세계 역사속에서 무수히 보아 왔다.

전통산업이 활발하던 오프라인시대 때 우리는 일본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전자산업에 관한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관련산업을 일으키다 보니 일본제품과 국제 경쟁력면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고 원부자재 또한 일본에서 수입하는 처지여서 일본의 비위를 거슬러서는 안되는 때도 있었다. 세계시장에서는 일본제품이 비집고 들어가지 못한 니치마켓을 노려야 했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결국 중국 등 후발개도국의 추격을 받아 세계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처지에 빠지기도 했다. 과거 침체기에 있던 우리 전자산업에 회생의 단비 역할을 했던 것이 1차, 2차 엔고현상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일본과 우리의 상관관계가 쉽게 이해된다.

그러나 인터넷시대를 맞아 우리의 ‘남벌’이 시작됐다. 인터넷이라는 가공할 무기를 앞세워 국내 인터넷장비업체들이 일본 열도의 공략에 들어간 것이다. 세계최고 수준인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450만명을 바탕으로 갈고 닦은 선진기술을 앞세워 넘을 수 없는 벽으로만 느껴졌던 전자산업대국 일본을 넘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불과 몇 년 사이 세계 정보강국으로 부상했다. 특히 초고속인터넷서비스는 개시 2년 만에 450만명이라는 경이로운 발전을 이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인터넷서비스의 발전은 관련기술 및 장비산업의 부흥을 가져왔다. 지난 99년 초 알카텔 등 외산장비가 독점하던 인터넷 장비시장은 삼성, LG 및 전문업체들이 가세하면서 국산장비의 기술력을 높여 현재 국내시장에서 우리가 만든 장비시장 점유율이 60% 가까운 수준으로 올라갔다.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초고속인터넷 기술이 일본에 진출할 수 있게 된 배경은 ISDN을 고집해온 일본정부가 초고속망 구축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지난해 7월 최대통신사업자인 NTT에 후발사업자를 대상으로 전화회선 임대 개방을 의무화했다. 광섬유망도 일반사업자에 개방했다. 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발전시키지 않고는 일본이 디지털시대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이같은 판단을 내린 것이다.

ADSL분야의 세계적인 사업자는 한국통신이다. 한국통신은 ADSL에서 160만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일본 NTT가 ADSL의 도입을 위해 한국통신에 기술진을 급파해 망 구성 및 적용기술의 협력을 타진했음은 물론이다. 한국통신의 문턱에는 일본뿐 아니라 필리핀 최대통신사업자인 PLDT를 비롯해 싱가포르 등 동남아 각 국이 기술협력을 위해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

패러다임 변환기 인터넷시대를 맞아 오프라인시대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전세계를 상대로 우리의 능력을 과시하고 그 전과물을 획득해가는 사례가 최근들어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초고속 인터넷분야에서 앞선 기술은 분명 남보다 한발 먼저 세계무대에서 새로운 비즈니스의 장을 열어주고 있다.

초고속인터넷서비스라는 인프라를 통해 성장발전해온 우리의 IT 벤처기업들은 최근들어 투자가들의 외면, 수요자들의 투자기피, 새로운 수익모델의 부재 등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언젠가 한번 겪어야 할 사건이었는데 그 시기가 생각보다 일찍 온 것에 불과하다고.

레스터 서로 교수는 ‘지식의 지배’에서 맨손으로 가시덤불을 뽑아내는 비유를 했다. 가시덤불을 뽑을 때 있는 힘을 다해 순식간에 움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소심하게 한번에 뿌리를 뽑아 낼 만큼 힘껏 쥐지 않을 경우 더많은 상처가 난다고 했다. 현재의 상황에 실망하지 말고 우리가 가진 앞선 힘을 단기간에 극대화하는데 총력을 경주한다면 남벌뿐 아니라 북벌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