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협상력 부재

쌍용정보통신의 해외매각이 계속 차질을 빚고 있다. 올초 위성복 조흥은행장이 기자회견을 자처해 밝힌 미국의 한 캐피털업체(뉴브리지캐피털)와의 가계약 체결이 하루아침에 결렬되더니 새로운 협상 대상자인 칼라일과도 몇달을 끌어오다가 결국 무산된 것 같다. 야단법석만 떨었지 얻은 것은 하나도 없는 형국이 됐다.

그동안 쌍용정보통신 매각협상 과정을 보면 예측 불가능했던 것도 아니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지난 1월 3일 위성복 행장의 가계약 체결 발표에서부터 최근 쌍용양회 고위 관계자의 협상결렬 각오에 이르기까지 이해하기 힘들고 엉성한 것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지분규모와 매각금액 등을 소상히 밝힌 조흥은행장 발표의 경우 사실 여부를 떠나 의아함을 먼저 떠올리게 했다. 협상 당사자는 아무런 언급도 않는데, 일방적으로 결혼선언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를 보였다. 협상 당사자측과 동시에 발표해도 어디까지나 가계약일 뿐인데 마치 성사된 것처럼 얘기해 놓고는 바로 이튿날 말바꾸기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10일후, 이번에는 쌍용양회가 직접 나서서 미국 칼라일과 쌍용정보통신 지분매각에 관한 기본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혀 조흥은행장의 해프닝을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배타적 협상기한을 넘기고 3개월이 지난 지금, 채권단과 쌍용양회는 협상이 계속 지연될 경우 쌍용정보통신 매각협상자를 칼라일로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쌍용양회 강복수 부사장은 “칼라일측이 매각방식을 지분매각에서 자산인수 방식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 매각금액을 깎으려 한다”며 협상결렬까지도 각오하고 있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어떻게 해왔길래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재계도 결국은 우리나라의 고질병처럼 지적돼온 정치나 외교에서의 협상력 부재라는 탄식의 울타리속에 들어온 것일까.

이번 쌍용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대외협상력은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선 협상 파트너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인수합병(M&A)과 지분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과 매각협상을 벌이면서 협상 파트너에 대한 정보나 의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의 카드패만 보여주다가 협상 주도권을 빼앗기기가 일쑤다. 특히 쌍용양회처럼 빚을 줄이려고 지분을 매각하는, 다분히 ‘을’의 입장에 놓인 경우 더욱 조바심을 드러낸다. 위성복 행장의 나홀로 발표도 조바심의 일면을 보여준 경우다.

외국기업들은 본계약 체결까지는 비공개를 원칙처럼 여긴다. 수출오더를 받아놓고도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 국내 기업은 서둘러 공개했다가 곤경에 처한 경험을 한두번씩은 갖고 있다. 하물며 빅딜에 해당하는 지분매각을 최종 성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공개하는 것은 기름통을 안고 불속에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SK도 SK텔레콤 지분매각과 관련해 곤혹을 치르고 있다. SK텔레콤의 주가하락이라는 악재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협상력 부재로 일본 NTT와의 협상을 계속 끌어온 결과다. 모든 협상은 유리한 위치에서 신속하게 매듭짓는 게 가장 성공적이라고 한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해서 협상 파트너를 무시한 채 과욕을 부리면 그 협상은 무산되거나 시간을 끌게 마련이다.

양보도 그 타이밍을 놓치면 의미가 없어진다. 기본적으로 협상은 윈윈게임을 벌이는 과정과 같아 서로가 실익을 얻을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야 한다.

올초 쌍용의 해프닝이 있은 지 며칠 후 중소벤처기업인 옥션과 미국 e베이는 성공적인 매각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 전날까지만 해도 양사가 지분매각과 관련한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기는 했지만 그 실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가 동시에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서로가 윈윈에 얼마나 충실했고 신속하게 추진했는가를 알 수 있다. 쌍용이나 SK와 같은 대기업이 지지부진할 때 중소기업에 불과한 옥션은 깔끔하게 매각협상을 타결하는 순발력을 보여줬다.

반면에 쌍용은 두번에 걸친 매각협상 결렬로 대외신인도 하락이 불가피하게 됐다. 그리고 그 불똥이 지분매각을 추진중인 현대정보기술, 동양시스템즈 등으로 튀어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윤재 증권금융부장 yj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