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IT는 경기의 바로미터

◆이윤재 증권금융부장

 요즘 증시는 외국인들의 주식매수세에 다소 들뜬 분위기다. 그러나 그 실상을 보면 금융주를 중심으로 한 저가우량주에 몰리고 있고 정보기술(IT)주들은 외면받고 있다. 외국인들이 연일 매수 행진 속에서도 한국 주식시장에서 최고의 옥(玉)으로 여기는 IT주를 외면하는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외국인들이 아직까지 국내 경기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전문가들도 현재의 주가는 미국의 금리인하와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오르고 있을 뿐 대세 상승기로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한다. 앞으로 나타날 경제지표와 기업 실적에 따라 다시 조정을 거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시각이다. 그리고 IT는 곧 국내 경기의 바로미터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외국인들이 IT주 매입을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IT산업은 작년 4·4분기에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대한 기여율이 50.5%에 달할 정도로 한국 경제의 중요한 위치에 올라와 있다.

 물론 외국인들이 지분보유한도(통신서비스 49% 등)에 묶여 있거나 삼성전자처럼 외국인 지분율이 60%에 육박해 더이상 주식을 매입하기가 곤란한 탓도 있을 것이다. IT주들이 몰려 있는 코스닥시장을 아직도 외국인들이 투기판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IT주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중요한 이유로, 앞서 지적한 대로 미국 IT산업의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이상 국내 IT산업도 단기간에 회복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문제다. IT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요즘 거론되는 경기바닥론이나 한국 경제의 회생을 점치기가 곤란하게 된 것이다. 특히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구조로서는 수출이 살아나지 않으면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그 중심에 IT산업이 서 있는 형국이다.

 수출주력품으로 이미 자리한 PC산업을 보자.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PC시장 불황이 올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수출·내수 모두가 바닥을 헤매고 있다. 지난 1·4분기 중 증시에 올라 있는 컴퓨터업체들의 매출과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71%씩 감소한 것만 보더라도 경기침체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가격하락에 시달리는 반도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대표적인 수출 효자품목인 반도체는 요즘 주력제품인 128MD램 가격이 3달러 밑에서 거래되는 등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또 출하량 대비 수주량을 나타내는 주문출하비율(BB Ratio)도 지난 4월 0.42로 낮아져 1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이는 지난달 D램 반도체 출하량이 100일 때 신규로 수주되는 무량은 42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본격적인 반도체산업의 회생을 위해서는 PC시장이 먼저 살아나야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긍정적인 신호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보통신 단말기도 단말기 보조금 지급 폐지와 내수시장 포화 등으로 내수시장이 크게 위축돼 있다. 그나마 일부 업체는 최근 수출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어 다행이다. 또 중국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시장 개방 등 심리적인 분위기는 되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독자적인 해외 진출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해 내년 초까지는 본격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부 기업은 최근 2년간 내수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에 따른 시설 확충 등 과당투자의 후유증으로 단기적인 유동성 위기마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외에도 IT산업을 받치고 있는 주요 제품의 수출이나 내수시장이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날이 갈수록 미국의 IT산업 변화에 민감하게 연동되는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다. 이는 또 디지털경제 환경이 무르익을수록 더 심화될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세계시장에 내놓을 만한 IT 기술이나 제품이 드물다는 게 걱정이다.

 이제 IT는 경기의 바로미터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세계 무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코스닥시장의 IT주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한 실타래처럼 얽혀가는 문제의 해법을 찾기는 힘들어질 것이다.

yj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