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사이버 전쟁

◆박주용 국제부장 

 

걸프전을 시작한 이라크의 군사력은 위압적이었다. 기갑으로 무장한 지상군과 첨단전투기들로 구성된 공군력은 아라비아반도의 패자로 군림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생화학무기와 적기의 침략을 무력화할 수 있는 대공화기까지 감안할 때 미국이 이 나라를 쉽게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라고들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의 참전이 시작된 후 전쟁의 승패는 단기간에 결정됐다. 쿠웨이트를 침공하던 후세인의 기세는 하루 아침에 사그라졌고 반격다운 반격 한 번 못해본 채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이라크의 하늘을 덮은 미국 전폭기들은 이 나라를 폐허로 만들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이라크는 지금까지 경제제재를 받아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걸프전은 당시 사람들에게 몇 가지 전쟁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줬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전자전이었다.

 이라크 패배의 원인은 물론 현격한 차이를 보인 군사력에 있었다. 그러나 너무도 무력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던 것은 미국이 선보인 전자전 수행 능력 때문이다. 미국은 전자파 교란과 통신망 교란을 통해 이라크군의 통신 환경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이라크군은 눈으로 확인된 전투기나 폭격기 외에는 마땅히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떨어져 있는 아군끼리의 연락체계도 와해되면서 그들은 고립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해야 했다. 전쟁의 승패는 이미 이것으로 결정돼 있었다.

 걸프전 이후 전쟁의 형태가 달라질 것이라는 다양한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주목할 만한 것은 전쟁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였다. 걸프전 발발 10년이 지난 지금 이는 상당부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공해상 충돌로 미국과 중국 해커들 사이에 실력대결이 벌어졌다. 이른바 사이버전쟁이다. 이들 해커들은 서로 결속력을 다져가며 상대방 국가 정부기관이나 주요 단체를 공격했다. 미국을 상징하는 백악관 사이트에 오성기가 게양되면서 그들의 전쟁은 정점에 달했다.

 해커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국가간 사이버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독도를 비롯해 정신대, 역사왜곡사건 등 국민 감정을 자극하는 사건이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와 일본 해커들은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외교청서 때문에 독도문제가 다시 불거졌던 지난해 국내에서는 해커에 의해 사이버의병이 모집되는 등 집단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의 역사 교과서 왜곡사건은 우리나라와 일본 해커들 간의 공방에 중국 해커들까지 가세해 3국간 전쟁 양상으로 발전했다.

 민간인들에 의해 네트워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이버 전쟁은 공격대상이 다소 제한적이다. 따라서 그 피해도 아직은 상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이고 있는 전쟁 수행능력은 충분히 경계할 만하다. 실제 국가간 전쟁이 발발한다면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대응으로 적국의 군 전산망을 교란시켜 지휘체계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 금융전산망을 마비시킬 경우 경제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며 발전소나 통신회사 전산망에 침입해 국민생활을 혼돈에 빠뜨릴 수도 있다. 군을 무력화하는 것은 물론 국가 기반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같은 사이버 전쟁에 대한 국가적인 준비를 하고 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군이나 국가정보기관 내에 조직을 구성, 전산망을 망가뜨리는 논리폭탄이나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나 데이터를 훼손하는 고출력 전자총 등을 개발하고 있다. 또 적국의 사이버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대응 체계 마련도 마련해 놓고 있다. 사이버 군대의 실체도 일부 드러나 있다.

 끊임없는 외침(外侵)에 시달려온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 전쟁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 때문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면서 군을 유지해오고 있다. 전쟁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면 대응체제도 달라져야 한다.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 정부와 군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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