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6.15 1주년, 남북IT교류의 의미

 고은미 기획조사부장

 

 지난해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 이후 평범하던 6·15라는 세 숫자는 이제 역사적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다시 그날 6월 15일이다. 지난해 평양의 백화원 초대소 만찬장에서 남북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공동선언 합의를 알리던 감격을 맛본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TV를 통해 이 장면을 보던 많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콧날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를 배경으로 그려진 한편의 그림이었고 대서사시였다.

 대북정책인 ‘햇볕정책’은 그때 여론조사 결과 80% 이상의 높은 지지를 얻었고 성급한 사람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속한 답방과 10년 내 통일을 점치기도 했다. 그후 남북간 각종 회담과 교류·접촉이 활발히 이뤄졌다.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사업이 시작됐고 이산가족 상봉, 시드니올림픽 남북선수 동시입장을 이뤄냈으며 개성공단 개발사업, 투자보장, 이중과세 방지 등의 경협합의서도 마련됐다. 남북 화해 분위기는 무엇보다 경제협력 분야에 훈풍을 몰고와 2001년 3월 남북 교역 규모는 3975만달러로 전년 대비 75%의 증가세를 보였다.

 경제협력 중에서도 특히 정보기술(IT) 분야의 교류 및 협력사업은 6·15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전환기를 맞았고 꾸준히 진전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중국 단둥에 남북합작 ‘코리아남북교역센터’가 설립됐고 올 2월에는 한글 정보처리 표준 분야에서도 공동안이 도출됐다. 이어 5월에는 남북 IT협력기관인 ‘하나프로그람쎈터’가 중국 단둥에 문을 열었다. 다음달 중에는 평양 근교에 남북합작 IT비즈니스타운이 착공될 예정이고 남북간 전자상거래가 가능한 합영회사도 설립된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오는 9월에 남북이 공동으로 평양에 정보과학기술대학을 세워 IT인력 양성에 나서기로 했으며 포항공과대학이 처음으로 북한의 평양정보쎈터와 IT 분야에 대한 공동연구를 추진키로 했다.

 활기를 띠던 남북관계가 부시 대통령 취임 후 소강상태에 빠져들었음에도 불구하고 IT 분야 만큼은 교류와 협력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IT 교류가 가장 현실적인 접근방법이라는 인식을 남북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오늘의 국제 정세를 ‘과학과 기술, 그리고 컴퓨터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IT를 강성대국 건설의 핵심’이라고 여긴다. 김정일 위원장은 올초 중국의 실리콘밸리라는 상하이 푸둥지구의 IT산업단지를 집중시찰하기도 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IT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시한다. 우리도 IT 선진국을 꿈꾸며 북한의 고급인력 활용과 북한 시장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다. 이처럼 IT 분야에서는 남북이 서로 상생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IT 교류가 지속되고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걸림돌로 작용하는 제도들에 대한 개선 방안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바세나르협약(The Wassenaar Arrangememt)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다. 바세나르 협약은 구 사회주의국가 등 전쟁 위험이 있는 국가들에 대해 전략물자의 수출을 통제하기 위해 결성된 코콤이 94년 해제되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한 기업체 사장은 대북 전략물자 반출을 제한하는 바세나르 협약 때문에 펜티엄급 이상의 PC를 북한에 제공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가로막혀 있는 것은 난센스며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해온 IT교류를 더 확대,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과 함께 부처간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상시기구인 대북IT센터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리 있는 말이다.

 이제 남북문제는 먼 장래를 내다보는 긴 호흡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로 얽힌 매듭은 경제로 풀 수도 있고 거기에서 IT는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 6·15 1주년을 맞아 IT를 기반으로 21세기 남북이 함께 한민족 번영을 이루도록 차분하고 조용히 준비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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