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리딩기업의 역할

◆양승욱 생활전자부장 swyang@etnews.co.kr

 최근의 날씨 만큼이나 국내 경제 전반에 어두운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이같은 먹구름은 올 하반기에도 쉽사리 걷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같은 경기침체의 직접적인 원인이 우리나라의 간판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산업의 침체에서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은 전자산업계 종사자들을 더욱 우울케 한다.

 실제 통계청은 6월중 산업활동 동향 보고서에서 반도체 수출악화로 산업생산이 지난 98년 10월 이후 32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됐다고 발표했다. 산업생산이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한 것은 전체 산업생산의 23%를 차지하는 반도체 생산이 16.1% 줄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산업생산이 2.3% 증가했다는 것은 최근 경기침체의 탓을 반도체산업으로 돌린다 해도 큰 무리는 아닌 듯싶다. 반도체를 비롯해 이미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전자산업이 새로운 희망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못할 것임을 예고한다.

 최근 반도체 경기하락에 휩싸여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PDP TV의 가격인하는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한줄기 햇살과도 같은 소식이다. LG전자는 현재의 음극선관브라운관(CRT)TV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가격을 획기적으로 인하했다. PDP TV는 일명 벽걸이 TV로 불리는 첨단제품. 그렇지만 가격이 비싸 보급이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물론 이번 PDP TV의 가격이 대폭 인하된 것은 내수진작을 위해 정부가 PDP TV에 부과되는 15%의 특소세를 오는 2005년까지 1.5%로 적용하는 잠정세율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LG전자의 인하폭은 이같은 특소세 인하율을 훨씬 웃돈다. 60인치 제품의 경우 당초 예상가격보다 절반수준인 1700만원대, 40인치 제품도 30% 정도 대폭 인하한 690만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100만원대의 디지털TV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디지털세트톱박스도 무료로 제공한다. 결국 실제 가격인하 폭은 절반을 훨씬 웃도는 셈이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가격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처럼 파격적인 가격인하에 대해 LG전자측은 기술 및 원가경쟁력을 확보한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경쟁사에서는 고개를 내젓는다. 아직까지 이 정도로 가격을 내릴 만큼 시장이 활성화되거나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LG전자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리딩기업의 고민이 엿보인다. 이번에 가격인하를 주도한 LG전자의 한 고위관계자의 설명은 이렇다. 현재 우리나라 PDP TV수준은 세계 최고다. 그런데 시장이 없다. 수출은 물론 내수시장도 열리지 않고 있다. 원인은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세계 일류상품이 있으면 뭐하나. 소비자들이 살 수 있어야 상품의 의미가 있다.

 즉 가격을 인하해 시장을 만들어가고 여기서 시장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당분간 이사업에서 채산성을 확보하기는 어렵겠지만 앞으로 PDP TV시장이 만개할 경우 리딩기업으로서 LG전자가 얻는 이익은 막대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열매를 거두기보다는 씨를 뿌릴 때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쟁업체들도 LG전자 만큼은 아니지만 줄줄이 가격을 인하했다. 이제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제품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가격으로 구입해 즐길 수 있게 됐다.

 PDP TV의 보급이 본격화되는 시기를 전문가들은 가격이 인치당 10만원선에 이를 때로 예상하고 있다. LG전자의 결단으로 PDP TV 시대가 크게 앞당겨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기업들이 신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일본 등 다른 나라기업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가 앞장서서 이뤄야 한다. 이것이 리딩기업의 역할이다.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할 경우 지난 50여년 간 세계 전자산업을 주도해온 일본에 뒤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반도체가 우리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됐던 것도 한 발 앞서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시대에는 일본에 뒤졌지만 디지털시대에서는 우리가 앞서갈 수 있다는 희망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이같은 노력이 뒷받침이 돼야 한다. LG전자의 결단이 돋보이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다. 첨단 영상기기 분야에서 반도체신화의 재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