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위기 뒤엔 `찬스`가 온다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들이 호흡을 맞춘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원제 Pay It Forward)’는 영화 제목만큼이나 따뜻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어느 작은 마을, 중학 1년생인 트레버는 첫 수업에서 ‘세상을 좀더 낫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오라’는 사회선생 유지 시모넷의 숙제를 받아들고 ‘사랑 나누기’란 아이디어를 떠올린 뒤 이를 실천에 옮긴다.

 트레버의 아이디어는 이렇다. 세 사람에게 아주 좋은 일을 해주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은혜를 갚으면 되겠냐고 물어오면 “Pay It Forward! 즉,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그 세 사람이 또 각각 세 사람씩 돕는다. 그럼 9명이 도움을 받게 되고 그 다음에는 27명, 81명, 243명 등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게 되는 일종의 피라미드식 선행이다.

 트레버는 이를 통해 자신은 물론 마음을 닫고 사는 엄마와 선생님 등 주변 사람들의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사랑의 전령사로 나서 훈훈한 사회를 만들어간다.

 새삼스럽게 이 영화가 떠오르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점점 피폐해지고 있는 게 안타까워서,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정쟁이 끊이질 않아서와 같은 거창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보다는 IMF 탈출의 원동력이 됐던 ‘벤처의 젖줄’이 갈 길을 못찾고 헤매는 모습에 엉뚱하게도 이 영화가 떠올랐다.

 벤처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지는 벌써 몇개월째다. 1년여전 벤처기업, 특히 닷컴기업에 대한 수익모델 요구가 붉어지면서 벤처투자 시장에도 냉기류가 흐르는 듯하다가 올들어선 꽁꽁 얼어붙다시피하고 있다. 최근에는 벤처캐피털이 조성하는 투자조합에 선뜻 돈을 내려는 곳이 없어 벤처투자가 정지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벤처기업 지원을 위해 예산의 일부를

내놓고 있는 출자확대도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벤처기업들은 어떤가. 그동안 수익모델을 찾기 위해 쏟아부은 돈이 밑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해 추가 펀딩에 목말라 있는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그렇지만 벤처투자 시장이 극도로 냉각된 상황에서 펀딩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힘들다. 그나마 실력(?)을 쌓은 기업은 기업공개(IPO)를 통해 새로운 시드머니를 확보하려고 하지만 이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대다수 벤처기업은 몸을 바싹 움츠리고 ‘버텨서 살아남자’는 식의 생존경영에 매달리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IT경제는 도무지 갈피를 잡기 힘들 정도로 혼미하다. IT주가는 어디로 튈지 연일 좌충우돌하고 있고 IT경기는 바닥을 확인했는지 아니면 더 추락해야 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 세계 IT경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경제는 ‘둔화’의 선을 넘어 ‘침체’로 치닫는 듯한 분위기다. 증시도 갈팡질팡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를 보여주기나 하듯, 이달들어선 메릴린치, CSFB, 골드만삭스 등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증권사들이 일주일이 멀다하고 반도체주에 대한 상반된 투자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나스닥시장이나 서울증시는 여기에 맞춰 춤을 춘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IT종목 전체가 이들 증권사의 반도체 투자의견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까.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와 같은 훈풍을 몰고 올 수는 없을까. 현재로선 그 길을 벤처업계 스스로가 찾을 수밖에 없을 듯싶다. 하나의 벤처기업이 이 난국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또다른 벤처기업이 이를 벤처마킹할 것이고 이러한 기운은 피라미드식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벤처캐피털은 이러한 벤처훈풍을 가능케 하는 중심에 서있어 보인다. 열려 있는 매체, 인터넷이 때로는 파괴적일 수 있고 또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엄청난 기회와 가능성을 내포하듯이 위기때의 투자가 더 많은 진가(캐피털게인)를 발휘할 수 있다. 위기 다음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려 있기 마련이다.

<이윤재 증권금융부장 yj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