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휴대폰업체 중국 진출

 ◆박주용 국제부장 jypark@etnews.co.kr

“이게 A사의 제품 가격이오. 당신 회사 제품은 얼마에 팔 수 있소.” 10여년 전 홍콩 바이어들이 국산 카오디오를 구매할 때 상투적으로 쓰던 방식이다. 경쟁사의 가격을 제시하고 이보다 싸게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수출물량 확보에 여념이 없던 국내 카오디오 업체들은 보다 경쟁적으로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 경쟁사의 가격정보를 입수한 일부업체는 바이어가 찾지 않았는데도 직접 찾아가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홍콩 바이어는 7∼8개 업체, 많을 때는 10여개 업체와 접촉해 원가 이하 수준에 카오디오를 구매해 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같은 구매방식은 미국이나 유럽 바이어들에게도 전파됐다. 이렇게 되자 외화벌이의 효자상품이었던 카오디오는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자 너도나도 이 사업에 뛰어들어 업체가 난립했던 것이 카오디오 산업을 사양길로 접어들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홍콩상인들의 수완에 발목이 잡혀 국내업체간에 벌인 가격 경쟁은 채산성을 잃게 했고 몰락을 가속시켰다. 수년은 더 수익을 거둘 수 있었던 카오디오산업은 그렇게 사그라졌다.

 이같은 과거는 이후에도 계속 답습됐다. 수출되고 있는 일부 가전제품이 해외에서 제값을 못받고 있거나 중저가 상품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가전제품의 제품력 만을 놓고 우리 기업들이 일본이나 유럽·미국 등지의 기업보다 떨어질 것이 없다. 오히려 디자인이나 기능성 면에서는 보다 첨단 상품을 만들 능력을 갖고 있다. 내수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전제품은 세계시장 어디에 내놔도 돋보일 일류 상품들이 즐비하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들은 상당수가 중저가 상품으로 수출에 나서고 있다. 물론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져 중저가 상품으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간의 가격경쟁이 우리상품을 중저가 제품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점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최근 들어 국산 휴대폰 단말기가 유망 수출 상품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중국 CDMA휴대폰 시장의 빗장이 열리면서 대량 수출의 기회를 맞고 있다. 6∼7개 우리 기업들이 중국 내 휴대폰 생산 비준을 얻은 현지 업체와 협력체계를 구성해 현지 시장을 공략할 기반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들은 제휴를 통해 생산시설을 갖추거나 합작회사를 설립, 생산에서 마케팅까지 관여하게 될 전망이다. 중국업체들이 우리 기업에 우호적인 것은 우리가 CDMA 종주국이고 단말기 역시 가장 앞선 제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업체들이 하기에 따라서는 중국 휴대폰 시장을 상당부분 장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 휴대폰 시장에서도 카오디오가 그랬던 것처럼 국내업체들간의 과열경쟁이 발생하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을 갖게 된다. 10여년 전 홍콩 바이어들은 국내업체들의 회사보직과 인력 수, 경영상태는 물론 사장의 개인 신상문제까지 파악하고 협상에 나설 만큼 치밀했다. 상대의 약점을 파악해 접근하는 그들에게 우리 기업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홍콩바이어나 중국의 휴대폰 구매자들 모두 유명한 청나라 상인의 후예들이다. 구미 각국과 일본이 그랬듯이 그들을 상대로 돈을 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휴대폰 업체들이 스스로 약점을 노출한다면 카오디오 산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국 휴대폰 시장은 하루 이틀 빼먹고 말 그런 시장이 아니다. 따라서 당장의 이익을 좇아 계획성 없이 기술을 내주거나 가격을 낮추는 어리석음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특히 우리 기업들끼리 서로를 깎아내리는 경쟁은 하지 않아야 한다. CDMA폰에 관한한 우리가 최고라는 인식과 함께 ‘이 기술 이상은 안된다. 이 가격이하는 안된다’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기업정신을 중국 휴대폰시장 공략을 준비하고 있는 기업들이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