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미래 창조 `여성CEO`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여자가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길 없는 길을 가는 것처럼 아득하고 힘든 일이었다. 시련을 딛고 이제 중견 기업인이 된 여성 최고경영자(CEO) 중에는 남편이 만든 회사를 남편 사후에 할수없이 맡게 된 경우, 조그맣게 일을 벌인 게 덩치가 커져 기업체계를 갖추게 된 경우도 있고 선구자적인 자세로 창업을 한 경우도 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비즈니스 세계에 몸담게 됐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5일 통계청의 조사 발표에 따르면 여성이 CEO인 업체가 100만곳을 넘는다고 한다. 이 가운데 통신업 분야는 20.7%로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99년 ‘여성기업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그해 7월 ‘한국여성경제인협회’가 설립된 후, ‘여성벤처협회’ 탄생 3년만의 일이다.

 얼마전 중소기업청이 실시한 ‘여성 기업인 경영활동 조사’에서도 여성 기업인들이 경영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사회적 인식이 점차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기업인 중 90%가 90년 이후 창업했으며 창업과정에서 겪은 애로사항으로는 자금확보·판로개척 등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영상 애로사항으로는 마케팅관리·자금조달·기술개발·거래기업과의 마찰 등이 각각 꼽혔다.

 90년 이후 여성CEO가 늘어난 데에는 IT산업을 중심으로 여성이 급격히 창업 대열에 합류한 데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섬세함과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좋은 IT분야에서 많은 여성 창업자들이 등장했다. 현재 IT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CEO들은 대략 100여명에 이른다.

 그들은 인터넷·콘텐츠·소프트웨어·게임 등 각 분야에서 소리 없이 등장하여 어느덧 번듯하게 기업을 일궈낸 당찬 여성들이다. 그들은 모두 ‘여성CEO’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여성CEO이기 때문에 주목받는 것을 거부하고 성별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경영 전반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며 능력 있는 경영인으로 거듭나려고 오늘도 뛰고 있다.

 주위의 편견을 견뎌내며 사업을 이끌어 온 여성 경영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미래에 대한 비전, 창조성, 강인함, 도전정신이 느껴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분야에 일찌감치 뛰어들어 숱한 좌절 끝에 성공을 맛보는 여성CEO들은 최선을 다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졌으면서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실패를 한다고 해도 빨리 해결을 하고 오래 집착하지 않는 편이다. 기회는 포기하지 않는 한 다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여성CEO의 말에는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난다.

 여성CEO들은 사회전반적인 변화에 대한 패러다임을 읽을 수 있고 완벽을 추구하다가도 돌아갈 줄 알고 요령껏 문제를 넘길 줄도 알며 스트레스를 잘견디는 강인한 체질의 소유자들이다. 스트레스에 강한 체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즐기는 체질이라고나 할까. 사업하길 잘했다며 사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를 배우는 데서 희열을 찾는다는 신세대 여성CEO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목숨걸고 사업하며’ 글로벌한 감각을 키우고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피말리는 일상을 견디는 이들을 보면 숙연한 마음까지 든다.

 지난 8월 여성CEO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자금문제를 위해 여성벤처협회의 제안에 따라 50억원 규모의 여성기업 전용펀드가 결성돼 관심을 모았다. 이제 펀드 결성으로 여성벤처 기업가들은 어느 정도 성장의 활력소를 찾게 됐다.

 영리하게도 여성 기업인들은 수백년 동안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인맥관리에도 관심을 갖고 각종 단체, 모임을 만들어 내고 서로 도와주며 그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요즘들어서는 ‘여성기업인양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 속에서 신바람나게 일하고 있다.

 사업하지 않고 편하게 살 수도 있지만 열심히 일해서 사회 발전에 일조하고 싶다는 여성CEO들은 이제 비즈니스를 사회적 의미로까지 연결시키는 성숙한 면모를 보인다. 여성이라는 편견의 테두리에 그들을 가두지 말고 그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정책과 사회, 문화적 분위기가 성숙되길 기대해 본다.

<고은미 기획조사부장 emk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