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사람`이 경쟁력이다.

 ◆양승욱 생활전자부장 swyang@etnews.co.kr

 산업계 전반에 감원의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있다. 얼마 전 IMF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났다고 자축의 잔을 들던 정부 고위당국자들의 모습이 아직 뇌리 속에 뚜렷이 남아 있지만 IMF로 가장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한 직장인들은 또다시 해고의 두려움에 떨고 있다.

 전자산업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상 최대, 사상 최초의 경영 성과를 이뤘다는 삼성전자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소식에 전자산업계 종사자들은 아연실색하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가 지난해 이룬 매출 34조원과 6조원 이상의 순이익은 우리나라 경제사의 한 쪽을 장식할 정도의 엄청난 일이다.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일본 소니조차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성전자를 공공연히 꼽고 있을 정도다.

 소니조차 부러워한 삼성전자가 올해 들어서는 이미 책정한 반도체부문의 투자 규모를 두 차례에 걸쳐 2조원 이상 줄였다. 그리고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희망퇴직을 통해 하반기에만 전체 인력의 10% 이상을 감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돌변한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 것은 3년 전인 IMF 직후다. 98년 당시 삼성전자는 대대적인 인원감축을 단행했다. 98년 한해 동안 희망퇴직과 분사 등을 통해 삼성전자의 인력은 97년 말 5만6000여명에서 4만20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전체 직원의 25%인 1만4000여명이 줄어든 셈이다. 이 같은 인력감축은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가장 성공적인 구조조정 모델로 찬사를 받았다. 또 삼성전자의 대대적인 인력구조조정으로 잘 훈련된 고급인력들이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대거 유입돼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계속되는 인력감축으로 남은 직원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으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던 직원들에게는 자괴감과 함께 가중되는 업무로 방황을 거듭해왔다. 더구나 자신의 동료를 떠나보내고 치워진 자리를 언제부터인가 정리된 다른 계열사의 인력들이 하나 둘씩 꿰차고 앉기 시작했을 때 삼성전자의 직원들은 분노와 함께 허탈감마저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에 다닌다는 명예 하나만으로 물불을 안가리고 일해온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들의 자존심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기게 됐다. 언제부턴가 삼성전자 직원들이 자랑스럽게 옷깃에 달고 다니던 푸른빛의 마크는 슬그머니 모습을 감췄고 이후 ‘조직의 삼성’이라는 말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98년 말부터 99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삼성 ‘엑소더스’가 본격화한 것에는 벤처도 크게 한몫했지만 이에 앞서 탄탄하던 삼성의 조직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는 게 당시 회사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또다시 시작된 삼성전자의 이번 인력구조조정으로 최소 4000명 이상의 고급인력이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오늘과 내일 삼성전자 사무실에서 벌어질 모습은 과거 3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은 분명해 보이며, 이로 인한 삼성전자의 경쟁력도 그 이상으로 추락할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인위적인 인력감축은 벌써부터 다른 기업은 물론 국민들에게조차 큰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인 삼성전자가 인원감축에 나선다는 것은 곧 우리나라 모든 기업이 대대적인 인력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삼성의 행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반도체산업의 침체로 경기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인위적인 인력구조조정을 단행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니며 대기업이 앞장서 인력감축에 나서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또 “IMF 시기를 겪어오면서 인력감축만이 능사가 아님을 경험했기에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덧붙인다.

 실제 삼성전자도 올해 들어서만 4000여명의 인력을 신규 고용했다. 이번 감축 인원의 수와 공교롭게 맞아떨어지는 수치다. 인력의 문제가 아니라, 반 년 앞의 상황도 내다보지 못한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경영시스템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삼성전자가 다시 한번 우리 경제사에 큰 획을 긋기 위해서는 ‘인재의 삼성과 조직의 삼성’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피부로 다가오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