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네 양대 명절 중 하나인 한가위가 다가왔다. 예전 같으면 다소 들떠 있어야 할 분위기는, 그러나 초조하기만 하다. 언제 어디서 터져나올지 모르는 테러응징을 앞두고 전세계 경제가 좌불안석이기 때문이다. 전쟁 시나리오가 경제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하면, 증권·외환·금리 등 금융시장이 춤추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또 한편에선 ‘파괴는 새로운 건설을 창조한다’는 장기불황의 타개책으로 전쟁을 조망하는 극단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어떤 시나리오가 전개되든 지금 우리 앞에 닥친 것은 살얼음판 그 자체다. 미국 테러발생 후, 즉각적으로 주가폭락이라는 쇼크로 반응한 게 우리나라의 경제다. 그리고 그 쇼크가 가시지 않은 지금은 ‘이용호 게이트’로 시작된 지도층의 비리로 우리 사회가 떠들썩하다. 한편에선 내년도 예산을 발표하면서도 테러전쟁 이후에는 가변적일 수 있다는 이례적인 여운을 남겨놓으면서 말이다.

 “믿을 데가 없다”는 기업인들의 탄식은 그래서 더 실감나게 들린다. 정부는 경기부양책을 동원해 시장수요를 되살려보겠다며 수출기업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당장 물건을 팔 데가 마땅치 않다. 금리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돈 구하기는 쉽지가 않다. 이번 명절이 지나고 나면 곧이어 3분기 실적이 공개되고 시장에선 또 한번 싸늘한 반응을 보일텐데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하는가. 또 연말은 어떻게 넘기고 내년에는 뭘해야 하는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사실 정보기술(IT)업계는 테러쇼크 이전부터도 몇가지 시험대에 올라 있다. 테러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부터 날아든 IT(기술주)시장의 침체, 구조조정의 가속화 조짐, 경제불황 예고 등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 승승장구하던 인터넷 열풍은 이제 온데간데 없고 그 버블이 걷히면서 IT업계에 깊은 반성을 남겼다. 그리고 주식시장에선 IT의 한계를 지적이라도 하듯이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구조조정을 재촉해왔다. 얼마전 휴렛패커드(HP)와 컴팩컴퓨터의 전격적인 인수합병 발표는 시험무대에 올라 있는 IT업계의 몸부림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거대한 흐름 속에서 국내 IT업체들도 생존전략을 짜내느라 안간힘을 쏟고 있다. 바싹 엎드린 긴축경영에서부터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발굴, 전략적 제휴 모색 등 살아남기 위한 방안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하고 있다. 바꿔말하면 IT구조조정 속에서도 문을 닫거나, 닫을 생각을 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보니 문을 닫지 않기 위한 생존경쟁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버블을 걷어내지 못하고 부실을 키워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금치 못하게 한다.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워야 생동감이 넘치고 체질을 강화할 수 있다는 논리와는 배치되는 상황이 우리 IT업계에 계속 이어져온 것이다.

 때문에 테러응징을 위한 전쟁이 시작될 경우 경제환경의 변화 정도에 따라 대량 함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몇군데서 자라난 종기를 방치하다가 몸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IT업체들이 스스로 문을 닫는 풍토가 아쉽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에게도 테러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가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어디에도 의존할 수 없는 긴박한 위기감이 IT업계 주위를 감돌고 있다.

 어려울 때에는 비용을 줄이고, 인력을 줄이고, 사업을 떼내는 식의 구조조정으로 앞으로 닥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할 시점이다. 기존의 구조조정 방식이 통할 수 없다면 이제부터는 살아남을 수 있는 짝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나아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우리의 IT산업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선다면 곧 내가 살 수 있는 길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영방식, 사업모델, 미래비전 등이 아무리 우수하다 해도 당장 돈을 벌어들이지 못한다(시장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더이상 끌고다녀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우수한 요소로 시너지를 더 높일 수 있는 짝을 찾는 게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영국의 조지5세는 다음과 같은 글을 벽에다 붙여놓고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하느님, 나로 하여금 달의 세계나 이미 엎질러진 우유로 인해 울지 않도록 가르쳐 주소서.”

 이윤재 증권금융부장 yj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