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소비를 살리자

 ◆양승욱 생활전자부장 swyang@etnews.co.kr

최근의 경제상황이 국제통화기금(IMF)때보다 더하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경기침체의 악순환과 미국의 아프간공격으로 세계 경제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우리 경제는 설 자리를 잃어버린 채 방황하고 있다.

 기업들마다 매출과 순익이 줄어들어 아우성이며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경제상황은 내년도 사업을 어떻게 전개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도 마련치 못하게 하고 있다. 기업들마다 4년전의 국가환난사태인 IMF를 극복하기 위한 비상경영체제를 다시 가동하고 있다. 또다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인원감축이 이뤄지고 있으며 경비는 물론 미래사업을 담보하는 연구개발투자비까지 축소하는 것도 4년전 IMF 당시와 너무도 흡사하다.

 그러나 IMF 당시에는 수출확대를 통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얼어붙고 있어 수출로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에는 만만치 않다.

 우리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내수경기를 진작시키는 게 시급한 과제라는 결론은 쉽게 얻을 수 있다. 최근 소비심리가 급격히 냉각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경제위기라는 주변여건 때문에 불안심리가 확산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실제 통계청은 9월 소비자전망조사결과에서 6개월 후의 소비동향을 나타내는 지표인 소비자기대지수가 8월에 비해 6.1 하락한 92.1을 기록했다고 최근 밝힌 바 있다. 소비자 기대지수 100이 소비를 줄이겠다는 가구수와 소비를 늘리겠다는 가구수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92.1은 앞으로 소비를 줄이겠다는 가구의 수가 더 많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비심리가 연말로 갈수록 더욱 위축될 것임을 보여준다.

 소비감소는 기업들의 판매감소로 이어져 재고를 증가시키고 생산을 감축시킨다. 기업이 이같은 위기를 타개하지 못한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또다시 실업률을 증가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국내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전자산업도 극심한 내수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용산 등 전자유통상가와 가전대리점에는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완연히 줄어들었으며 매출부진을 견디지 못해 매장을 철수하거나 전직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IMF 이후 신유통으로 주목받던 전자양판점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기업들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소비자 붙잡기에 나서고 있지만 수그러든 소비심리는 되살아날 줄 모르고 있다. 각 사들마다 유통재고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으며 이 여파로 벌써부터 가격질서가 붕괴될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연말이라는 시기는 제조업체나 유통업체에 더욱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4분기의 실적이 한 해 농사를 마무리짓는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뿐 아니라 연말에 있을 조직개편이나 인사에 매출실적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해 소비심리를 되살릴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이 없는 한 올 연말 기업들에는 IMF 못지않은 우울한 해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비록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소비가 완전히 죽어버린 것은 아니라는데 일말의 희망이 있다.

 신혼부부들이 혼수 1순위로 고가의 디지털가전제품을 꼽고 있으며 강남상권을 중심으로 수백만원대의 디지털 TV나 양문여닫이냉장고 등의 판매가 오히려 크게 늘고 있다. 또 IMF 당시 인기를 끌었던 중고 PC 나 중고가전제품을 지금은 소비자들이 거의 찾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소비여력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문제는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어떻게 녹이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의 신제품개발 및 마케팅 등도 당연히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당 가격이 600만원에서 2000만원에 이르는 PDP TV가 특별소비세를 인하한 이후 이전보다 판매량이 배이상 늘었으며 올들어 김치냉장고가 일반냉장고의 판매실적을 상회했다는 사실은 정책입안자들이나 기업경영자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경제를 살리는 것이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수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게 우선 과제다. 정부나 기업 모두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탓하기 이전에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되살릴 수 있는 불씨들을 하나, 둘 모아 이를 지필 수 있도록 지혜를 짜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