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산자·정통부는 `휴업중`

 ◆이택 산업전자부장 etyt@etnews.co.kr

IT기업인들이 하소연을 넘어 아예 절규하고 있다. 정치권이야 10·25 재보선을 통해 민심의 주소를 다시한번 확인했다지만 정부를 향한 기업인들의 절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가뜩이나 세계적인 IT 거품 붕괴로 수출길이 막혀 있는 판에 9·11 미국 테러까지 겹쳐 생존의 절박한 몸무림에 나선 기업인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중소기업 대기업 가릴 것 없이 국내 IT업계가 줄줄이 퇴출대에 설지 모른다고 강조한다. “제발 언론이라도 나서 대책을 찾아 달라”며 답답함을 토로할 정도다. 경기 후퇴와 IT침체론이야 충분히 홍보됐고 기업들로서도 비상 경영체제 구축 등 나름의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도무지 출구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현재와 같은 상황이 조금만 더 지속된다면 기업인들은 정치에 환멸을 느낀 이상으로 정부에도 등을 돌릴 것이라는 점이다. “도대체 정부가 뭐하는 곳입니까. 나라 경제가 가라앉을 지경인데 회생 대책하나 없습니다. 어려운 때 일수록 정부가 깃발을 들어 주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기업도 쫓아가지 않겠습니까. 지금 한가하게 중국이 위협국이라느니 내년 하반기부터 경기가 살아난다느니 하는 고담준론할 때 입니까. 당장 사람부터 살려 놓고 볼 일 아닙니까.” 기업인들의 반복되는 목소리다.

 IT기업인들로서는 다급하다. 누가 옳은지 혹은 어떤 정책이 정도(正道)인지는 중요치 한다고 한다. 쓰러져가는 기업을 지탱해 줄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릴 수출이 위축되면서 공장을 돌리고 근로자에 임금을 줘야 할 기업가들에게 마지막 기댈 언덕은 내수뿐이다. 그런데 그 내수마저 급격히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어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다. 오죽하면 김대중 대통령까지 나서 “내수 진작책을 시급히 마련해 달라”고 내각에 당부까지 했겠는가. 기업인들은 자연히 정부만 쳐다 보지만 별 효험이 없는 것 같다. 기업가들에겐 정부가 속수무책 손을 놓은 채 “어찌 되겠지”하며 ‘소 닭보듯’ 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사실 정부의 정책이란 호황기에는 별 필요가 없다. 그대로 나눠도 시장과 기업이 신바람 나게 돌아간다. 이 때는 과열과 불공정 경쟁만을 감시하는 심판의 역할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어려워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책을 통해 그림을 그려주고 생산과 소비를 리드해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기업인들은 정부가 가는 방향은 거꾸로라고 비판한다. IT산업이 신경제의 핵으로 등장하면서 정부는 수많은 육성 및 지원정책을 쏟아냈다. 이에 힘입었는지 몰라도 IMF터널을 일찍 빠져 나올 수 있었고 한국 경제 구조가 바뀌었다. 그러나 정책이 꼭 필요한 지금의 정부는 오히려 꿀 먹은 벙어리라는 것이다.

 더구나 IT업무 영역을 둘러싸고 하루가 멀다하게 정책 경쟁을 벌였던 산자부와 정통부는 정작 상황이 나빠지자 약속이나 한 듯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기업인들의 시각이다. 그래서 이제는 비아냥이 터져 나온다. “정통부는 천문학적 정보화촉진기금 집행부서고 산자부는 밥 그릇에만 관심 있다”는 극단적 표현이 그것이다. 또 양 부처가 정권 말기가 되면서 본연의 정책보다는 밥 그릇 싸움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일상화되고 있다. 실제로 기업인들은 내수경기 활성화는 뒷전인 채 IT기본법, 전자상거래 기본법 등으로 충돌하고 있는 산자·정통부의 갈등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이제는 정부가 대답해야 할 차례다. 산업과 서비스가 균형있게 발전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최소한의 내수를 자극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은 없는지 심사숙고하고 기업을 이끌어 주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4류 정치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를 이만큼 성장시킨 것은 그나마 사명감으로 무장한 똑똑한 관료집단과 미친듯 일해온 기업인, 근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가 나라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데 마지막 보루인 관료 집단까지 민심에서 멀어져서는 곤란하다. 산자·정통부는 ‘휴업중’이라는 업계의 비아냥을 비아냥으로만 끝 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