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나팔수의 등장

 ◆정복남부국장 겸 정보통신부장 bnjung@etnews.co.kr

국제통화기금(IMF) 극복의 일등공신을 꼽으라면 단연 IT산업이다. 국가성장동력이란 평가를 국내외로부터 받았던 이러한 IT산업이 불황 탈출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치 못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경기활성화, 내수진작을 위한 추경예산 편성 등 거창한 구호를 내놓고 있지만 기업하는 사람들에게는 피부에 와닿지 못하는 듯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심각한 상황을 전한다. IT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모사장은 시장수요가 죽고 있어 재고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고 하소연한다. 어떤 벤처기업가는 살기 위해서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그 내용인즉 사업축소 및 감원이다. 특히 국내 IT산업의 젖줄이었던 벤처캐피털 중 절반 이상이 금고를 닫아걸고 직원 감원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어떤 벤처캐피털은 투자하고 남은 자금을 투자자들인 주주들에게 돌려주고 회사를 청산한 경우도 있다.

 아이디어와 기술을 바탕으로 대박꿈을 꿔왔던 IT업계가 생명줄 이어가기, 손실 최소화라는 현실에 목을 매달고 있는 상황을 대변하는 사례들이다.

 세계의 주목을 받아왔던 우리의 IT산업이 이처럼 급전직하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IT산업은 IMF체제 직후인 97년말을 분기점으로 PCS 상용화, 초고속 인터넷, 정보화 확산을 기점으로 3년동안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 결과 IT산업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2000년말 현재 27.4%까지 올라서는 국가전략산업으로 자리매김했고 지금까지도 외국들로부터 경이로움의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던 한국의 IT산업이 이제 생명줄 이어가기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물론 최대의 찬사에서 최악의 현실로 이어지는 과정 중에 국내외적인 거시경제 지표의 악화, 반도체 등 세계IT시장의 수요위축, 미국테러와 반테러전쟁 등 악재가 연이어 터진 것도 사실이다.

 한국 IT산업이 지난 3년의 성장과정에서 과거 산업화 단계의 은행대출에 의존한 것이 아닌 펀딩에 기댔다는 사실은 그래도 위안이다. 최악의 현실에서도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제 IT산업을 다시 살리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우리 IT산업의 미래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히 가능성이 많다는 긍정적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 컬럼비아대학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더높은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도 초고속인터넷 및 이동전화·무선인터넷 가입자의 지속적 증가, 소프트웨어시장의 성장세 지속, 무선통신기기 및 방송기기와 관련 서비스시장의 급성장 등 IT산업을 견인했던 요인들이 앞으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경제의 확산과 지식정보화의 지속적 추진, 인터넷의 실생활 이용률 급증이 가세하고 2002년부터는 IMT2000, 디지털 위성방송, 디지털 지상파방송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는 다양한 신기술 IT산업들이 향후 성장을 주도할 게 분명하다.

 우리의 IT산업은 외형적으로는 성장정체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커다란 가능성을 가진 성장요인들이 곳곳에 잠복하고 있어 이를 성장동인으로 이끌어낸다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침체터널을 지나가는 데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제 IT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돌파구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심리적 위축현상을 제일 먼저 극복해야 한다. 경제가 어렵다는 의식이 잠재한 상황에서 정부가 아무리 용을 쓴들 별무신통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다양한 경기활성화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간과하고있는 게 있다. 잠복해 있는 IT산업계, 벤처캐피털, 애널리스트들의 불안심리다. 이 때문에 IT산업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심리적 위축을 불식시켜 줄 나팔수의 등장이 요청된다.

 IMF 이후 현 민주당의원인 남궁석 전 정통부장관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정보화전도사를 자임하며 다양한 미래비전을 제시했고 이같은 그의 입은 시장에서 먹혀들었다. 지금처럼 정부 관계자들이 ‘3G, 특히 WCDMA는 어렵다’ ‘통신시장 구조조정이 중요하다’라는 부정적 발언만 하고 다닌다면 우리의 IT산업 회복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반대로 ‘이제 기회가 왔다’ ‘경기부양을 위한 통신사업자의 투자를 독려하겠다’ ‘신산업 육성을 위해 3G의 투자를 적극 유도하겠다’는 발언이 제시된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까. IT산업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선도해 나갈 나팔수가 이제 정부 내에서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