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中 공략 변화가 필요한 때

 ◆이윤재 증권금융부장 yjlee@etnews.co.kr

며칠 전 정보기술(IT) 대기업의 한 임원이 들려준 얘기다. “저는 요즘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남의 말을 들어주기가 힘들어 고생이 많았습니다. 어떤 때에는 말을 듣는 도중에 다른 상상이나 추억을 떠올리며 참아넘기기도 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꾹참고 들어준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지금도 남의 말을 듣는 훈련을 계속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그의 훈련은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남을 칭찬하고 양보하는 습관을 키우기 위한 연습에 열심이다. “제가 사업본부를 새로 맡았을 때 특유의 카리스마적 통솔력을 발휘해 조직을 단기간에 장악했습니다. 누가 봐도 완벽하게 조직을 장악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가끔 한번씩 조언을 해주는 분의 시각은 정반대였습니다. 제가 아무리 옳은 얘기를 해도 그것이 강압적이라면 겉으로는 수용하는 것 같으면서도 속으로는 반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란 이성보다 감성에 더 치우치는 경향이 짙어 저같은 통솔력으로는 조직을 장악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랫사람의 일처리가 엉성하더라도 꾸짖기보다 잘한 점이나 잘할 수 있는 점들을 찾아보라는 게 그의 충고였습니다. ‘아랫사람이 당신만큼 일을 잘한다면 당신 자리에 있어야지 왜 그 자리에 있겠는가’.”

 오랜만에 만난 이 임원은 이미 IT업계에선 불같은 성격에 활달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사람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려고 부단히 애쓰는 모습에, 얼굴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얻은 그 나름대로의 결실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먼저 외모의 변화인데 요즘 들어선 화색이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하직원들이 그를 찾아와 얘기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이를 통해 그 직원은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나서는 능동적인 자세로 변하고 사업본부내 업무 플로가 훨씬 매끄러워졌다. 이제 그는 일방적인 업무지시보다는 부하직원의 얘기를 듣고 조언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하는 법을 깨닫고 있다고 한다. 말이 많아 후회하는 일이 크게 줄어들었음은 물론이다.

 칭찬하는 것은 더 큰 수확을 안겨다줬다. 잘못한 일을 질책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로 자신이 일을 잘못 처리한 것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보다는 잘못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더 의구심을 갖고 질책에 야속해 하는 게 인간의 속성중 하나라는 것을 그는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잘못 처리한 일이라도 칭찬거리를 찾아 얘기하면 의외로 비슷한 일을 다시 반복하는 경우는 크게 줄어드는 것을 알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일에 대해 자신을 갖게 되고 또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주위의 동료나 상사에게 자신있게 묻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래서 그는 요즘 부하직원들의 칭찬거리를 찾아다니느라 바쁘단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IT경기가 냉각되면서 비즈니스가 제대로 성사되지 않아 날로 짜증이 가중되는 요즈음, 기업이나 사업의 책임자가 부하직원의 말을 경청하고 칭찬하는 것은 의외의 모습으로 비쳐진다. 이 임원처럼 스스로를 탈바꿈하는 연습도 자칫 이 시기에는 한가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면,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덕목을 갖춘 리더로 거듭날 수 있다면 힘들고 어렵지만 시도해 볼만한 훈련이 아닐까.

 더욱이 엊그제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시장에 진입하려면 이러한 훈련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일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IT기업들이 중국시장을 노크하다가 중도 포기하거나 지지부진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조기에 과실을 따내려는 성급함 때문이었다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보다 한 수 위인 중국기업과의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려면 스스로 하수임을 깨닫고 인내하면서 배우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경청과 칭찬과 양보가 체질화됐을 때 비로소 그 기업은 중국시장을 뚫을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임원의 얘기는 아직도 필자의 가슴속에 비수처럼 꽂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