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벤처 재도약 방안은

◆윤원창 부국장겸 과학기술부장 wcyoon@etnews.co.kr

 한때 우리 경제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벤처산업이 1년 반 가까이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민간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분석을 종합해 보면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특히 정보기술(IT) 업종의 침체가 벤처위기를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각종 벤처 관련 금융사고에 따른 도덕성 훼손, 수익성 없는 비즈니스모델, 벤처정신 상실 등으로 업계 전반에 유동성 위기를 초래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원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장기적인 전략 없이 무차별적으로 벤처 지원에 나섰던 정부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벤처거품이 사라진 지금 벤처가 대기업을 대신해 한국경제의 주력이라는 발상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사실 현정부 들어 김대중 대통령이 ‘벤처강국’을 강조한 뒤부터 정부 고위당국자들은 ‘재벌의 대안은 벤처’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그래서 벤처지원 정책이 관련 부처끼리 ‘밥그릇’ 다툼까지 벌이면서 내놓았다. 너무 많은 부처에서 한꺼번에 경쟁적으로 내놔 제대로 교통정리가 되지 못해 과잉 중복 투자된 것은 물론 시장논리에 거스르는 무작정 지원책도 등장했다. 벤처투자로 손실을 본 벤처캐피털에 손실을 최저 50%까지 보전해 주는 벤처투자손실보전제도라는 희한한 아이디어가 대표적이다. 졸속정책이란 비난 여론에 따라 백지화된 상태지만 이런 발상을 낸 장본인이 누구인지를 놓고 아직도 뒷말이 무성하다.

 요즘도 벤처지원책은 한 달이 멀다 하고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최근 정부가 국민연금 등을 통해 연말까지 5000억원 이상의 투자재원을 만들어 1만여개 기업을 지원한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또 얼마 전에는 법인세 폐지가 이슈로 등장하면서 정부가 내년부터 지식벤처기업에 한해 법인세 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시설규모가 아주 작고 인력중심으로 영업이 이뤄지는 기술집약도 높은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면제해 주는 대신 이익금을 나눠 갖는 주주들에게 소득세를 부과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요즘 벤처기업인들을 만나면 구름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체념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가 연말까지 벤처투자재원을 1조원 이상 조성하면 유망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벤처업계는 ‘벤처 생태계’가 중병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투자로 활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라는 지적이다. 법인세 면제 문제도 현재 상황에선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또 바뀔 게 뻔한데 무슨 기대를 하느냐”고 말하는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진짜 속마음을 읽기는 힘들지만 정치 불신감이 경제활동에 악영향을 주고 있음은 틀림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벤처지원책을 이제 멈춰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벤처기업의 성공률은 낮지만 끊임없는 기업의 생성과 성장, 그리고 기업분할(spin-off)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 많은 국가가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벤처기업을 무조건 지원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벤처가 재도약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이다. 벤처산업에 요구되는 실패 용인, 전문성 추구 등 문화가 바뀌어야 할 부분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할 문제지만 우선적으로 벤처에 대한 올바른 시각과 평가가 급선무다. 벤처에게 자금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자금을 지원해 준다고 해서 벤처가 육성되느냐 하면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벤처를 기업가 정신의 발로로 받아들여야지 그들을 무조건 칭찬하고 비하하면 도덕적 해이가 유발되거나 자생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어 이때는 아무리 자금을 지원하더라도 성공하기 어렵다.

 최근 코스닥시장이 회복되고 벤처투자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하지만 벤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평가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그것은 언제 식을지 모른다. 그런만큼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에 있어서도 자금지원보다 사회가 벤처를 올바르게 평가하여 벤처 스스로가 용기와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중 하나가 스타벤처를 키우고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공생하는 벤처 클러스터를 촉진하는 것이다. 벤처가 강한 국가들은 모두 강한 기업 클러스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이 시점에서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