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거시적인 방송정책

 ◆ 원철린 국장석 부장 crwon@etnews.co.kr

 이제 디지털 방송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따라서 디지털 방송으로의 설비전환비용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당장 우리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해 당사자인 방송사는 물론 어떠한 형태로든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시청자, 그리고 이를 정책적으로 풀어 나가야 하는 정부 모두는 이 문제를 더이상 나몰라라할 수 없게 됐다.

 KBS2 FM에 광고를 허가한 방송방송위원회의 결정으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방송계 안팎이 시끄러워지고 있다. 더구나 이 문제는 정부의 공영방송정책과 맞물려 있어 쉽게 해결되지 않은 채 오래 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일 방송위원회는 내년 1월 1일부터 대중 음악전문채널인 KBS2 FM이 광고방송을 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 결정으로 KBS가 얻는 광고 수익은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라디오광고시장규모가 2500억원 수준인 점에 비추어 KBS가 FM광고를 통해 연간 50억원정도 추가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미미한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KBS입장이 광고에 100% 의존하는 상업방송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상업방송의 경우 방송사가 광고를 비싸게 요구하면 광고주가 광고를 하지 않으면 된다는 시장의 원리에 맡겨 놓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공영방송은 단순히 광고 시장논리에 맡겨놓을 수 없다. 시청료에 의존하는 공영방송으로서 갖고 있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방송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그래서 논란이 되고 있다.

 디지털 방송 재원마련에 따른 이러한 논란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디지털 방송을 실시한 영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영방송인 BBC의 시청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영국정부의 입장에 대해 시민단체들의 반대 목소리도 높다. 시청료인상에 앞서 방만한 BBC의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반대편 논리에 대해 BBC는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BBC의 역할을 단순히 정부정책을 대변하는 나팔수로 보지 말고 밀려오는 외국 문화에 맞서 영국문화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봐달라고 호소하면서 설득에 나서고 있는 것. 이러한 설득이 어느정도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BBC의 이같은 논리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던져주고 있다.

 뉴라운드의 출범으로 서비스시장의 개방은 불가피하다. 앞으로 밀려들 수밖에 없는 외국 방송문화를 지금의 공영방송체제로 막아낼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디지털방송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번 기회에 우리의 방송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천문학적인 숫자인 수조원이 필요한 디지털방송의 전환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선 광고료 인상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방송 수용자들이 내고 있는 시청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지금과 같은 방송정책으로는 방송수용자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 오히려 광고료 인상보다 더한 반발에 부딪칠 것으로 보인다. 방송정책의 손질을 통해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디지털로 들어가면서 방송매체가 다양해지고 있는 마당에 지금처럼 국가가 상당수의 지상파채널을 소유하고 있을 필요가 있는가는 점이다. 오히려 채널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 채널들을 민영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부 방송채널을 민영화하면서 거둬들인 수익을 디지털전환 비용으로 투자해야만 시청자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서비스개방에 따라 밀려오는 외국문화로부터 우리 문화를 지켜내는 문화지킴이의 역할을 순수공영방송에 맡겨야 한다.

 아울러 디지털 전환은 지상파방송만의 문제가 아니다. 케이블TV도 디지털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방송구조개편도 서둘러야 한다. 일부 채널을 민영화하면서 지상파방송과 케이블TV방송, 위성방송 등의 통폐합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방송과 통신정책에 대한 손질도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방송사와 통신사간의 결합도 막을 필요가 없을 듯싶다. 정부가 지금처럼 방송과 통신을 분리하면서 규제일변도의 정책을 펼치기보다는 오히려 영역간의 구분을 풀어 놓고 자유경쟁을 시키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만일 독과점이 염려된다면 공정거래법 등으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따라서 땜질방식의 근시안적인 정책은 오히려 우리의 방송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디지털 재원마련을 둘러싸고 일어난 논란을 해결할 수 없다. 지금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보는 정책결정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