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년. 말의 해다. 말과 인류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말이 인류의 생활에 이용되기 시작한 때는 대략 청동기 시대로 추정된다. 그후 말은 운송수단일 뿐 아니라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존재였다. 그런 말이 역학에서는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동물로 꼽힌다. 제황의 출현을 예언하고 초자연적인 세계와 교통하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왔다.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의 시조인 혁거세왕은 말이 전해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루 6부 촌장들이 알천 둑에 모여 백성을 다스릴 만한 임금을 찾아보자고 의논하고 있을 때 양산 밑 ‘나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땅에 드리워졌다. 이를 이상히 여긴 촌장들이 이곳을 찾았을 때 그곳에는 웬 흰말 한 마리가 보랏빛 알 한개를 앞에 두고 무릎을 꿇고 절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촌장들을 본 말이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로 올라간 후 촌장들이 말 앞에 있던 알을 깨자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 사내아이가 바로 신라를 세워 왕이 된 박혁거세였다.
말과 알의 관계를 당시 촌장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받아들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말이 천신의 사자며 왕의 출현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동국여지승람’에도 나타난다.
이 책에는 고구려 시조 동명왕이 기린말을 타고 굴로 들어가 땅 속을 통해 조천석(朝天石)으로 나아가 승천했다고 적혀 있다.
우리의 역사나 민속에 말이 신성한 동물이라는 징표는 많다. 조선 태조는 왕권을 수호하기 위해 서울 동대문 밖에 중춘(仲春)에 길일을 택해 마조단(馬祖壇)을 설치해 제사를 지냈다. 무속에선 말은 하늘을 상징하며 날개 달린 천마는 하느님이 타고 하늘을 달린다고 전한다. 민간에서는 말을 무신으로 여겼으며 쇠나 나무로 말 모양을 만들어 수호신으로 삼기도 했다.
말띠 해인 올해 우리나라의 운세를 보자.
대부분의 역술가들은 올해 말처럼 활기차고 원기가 왕성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한다.
올해 우리의 운세는 수화기제(水火旣濟)의 괘상이다. 물이 위에 있고 불이 아래에 있는 형국이란다. 이는 결과가 좋고 나쁨을 떠나 큰 마무리가 이뤄진다는 뜻이다. 올해 우리의 운세는 결코 나쁘지 않음을 의미한다.
운세전문사이트 사주닷컴아카데미 노해정 부원장도 이와 다르지 않은 운세를 점친다. 그는 올해 우리의 운세를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이라고 했다. 물은 나무를 살리고 나무는 불의 기운을 북돋울 것이라고 점쳤다. 노 부원장은 올해 목(木)의 뜻을 담은 국운의 상승세를 타고 전자·반도체 등 불(火)에 속하는 IT산업이 활황세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역술가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올 임오년이 “국운이 피어나는 좋은 해”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과거 역사기록을 들춰보면 불운한 일도 적지 않다.
우선 가깝게는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적으로 공격한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41년이 임오년이다. 이는 우리 국민이 일본에 징용돼 승산없는 전쟁에 참여해 시련을 겪은 해였다.
또 1882년 임오년 역시 불운한 해였다. 이 해에는 조선 구식군이 별기군의 특별대우에 반발해 군란을 일으켰으며 이들은 일본인을 살해하고 국모인 민비까지 시해하려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 해에는 군란뿐 아니라 전염병까지 만연해 백성이 큰 어려움을 겪었던 해로 전해졌다. 더 거슬러 올라가 1762년 임오년에는 영조가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게 한 뒤 손자인 정조로 하여금 대를 잇게 했다.
이러한 예에서 보듯 임오년은 말처럼 원기가 왕성한 한 해가 될 수도 있지만 사도세자처럼 차가운 죽음의 기운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임오년 운세 중 신바람나고 좋은 일만 적중하고 불행한 것들은 비켜나가 ‘다시뛰는 IT코리아’의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금기현 IT산업부장 khku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