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WWW’란 용어를 접했을 때는 생소하고 어려워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웹’은 이제 생활화됐다. 그때는 그 배경 ‘기술’ 설명이 어렵고 그 기술로 가능하다는 응용서비스가 와닿지 않았다. 그게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인터넷을 이용한다.
‘세계 최초, 최고 기술 제품’을 만들었다는 업체가 있다. 제품설명회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전문용어가 거침없이 튀어나오고 생경한 외래어가 난무한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는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고 믿고 신기술 개발에 쏟는 노력도 적지 않지만 그 기술을 이용하려는 사람에게 이해시켜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그것이 우리에게 세계 최고의 기술이 없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기업이 연구소를 두고 연구하고 어떤 기술을 개발해도 생활 속으로 기술이 들어오기까지 ‘대단하지만 어려운’ 그 기술은 소수에게만 이해되고, 공유되고, 그리고 사라진다. 기술을 제대로 설명해주거나 평가해주는 기관도, 사람도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기술에 쏟아부은 노고와 투자금액은 물거품이 된다.
이제 기술 개발 못지않게 ‘기술’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때가 되었다. 비슷한 기술이 동시에 개발되기도 하고, 좋은 기술이 있어도 그 기술을 제대로 알고 평가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기술 개발자도 답답한 노릇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개발되면 별 볼 일 없다가도 외국인이 그 기술을 사다가 이용하면 우리는 신기술 도입이라는 이름으로 비싼 돈을 주면서 도입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기술은 발전하고 진화하면서 우리의 생활방식,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진화는 컴퓨터·반도체·광·미세가공 기술 등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주목되는 것은 디지털 기술에 의해 정보기기의 소형화·고속화·대용량화·다기능화가 가능해졌고 우리 경제나 사회 시스템도 빠르게 디지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디지털 기술은 완성된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큰 변화를 거치면서 진화될 것이다. 손바닥 안의 인터넷은 이제 그 시작에 불과하다. 초고속정보통신망 가입자 수가 세계에서 으뜸인데도 우리는 IT 분야에서 세계에 내놓을 만한 기술이 없다. 왜 우리는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기술 개발을 부르짖으면서도 세계적인 기술을 내놓지 못하는 것일까.
90년대 자본시장이 개방되고 선진 투자기법이 소개되면서 기업을 분석하고 각 산업의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애널리스트’란 직종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증권사는 리서치팀을 두고 애널리스트가 분석해내는 보고서를 뿌려대고, 그 보고서 덕에 일반인은 경기흐름을 읽고 투자에 도움을 받는다.
증권시장에서처럼 기술시장, 즉 테크놀로지 분야에도 ‘테크 애널리스트’가 필요하다. 그들은 어떤 기술이나 신제품이 나오면 그 기술이 탄생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시장성·상업성·전망 등을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여야 할 것이다. 미국 유수의 연구소나 리서치사들은 테크 애널리스트를 두고 있다.
우리도 이제 유능한 테크 애널리스트를 배출해야 한다. 그들은 벤더에서 서비스제공업체에까지 의사결정에 필요한 전략적이고 분석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고급인력이어야 한다. 테크 애널리스트의 기술분석이 권위를 갖고, 그들의 영향력이 제품 개발이나 마케팅에서 힘을 갖도록 하자. 그들이 우리가 애써 개발한 기술을 분석해주고, 평가해주고, 재창조하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주자. 기술은 개발하기 어렵지만 상용화된 기술의 혜택은 모든 사람이 받는 것이다.
테크 애널리스트가 기술을 관리하고 유지·발전시켜 주는 역할을 맡았으면 한다. 하나의 문학작품이 평론가에 의해 재창조되듯 새로운 기술은 ‘테크 애널리스트’에 의해 재창조되었으면 한다.
<고은미 기획조사부장 emk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