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욱 생활전자부장 swyang@etnews.co.kr>
얼마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가전박람회(CES)를 다녀온 기업관계자나 참관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한국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음을 실감했다는 것이다.
예년 같으면 한국의 기업들이 과연 이 전시회에 참가했는가를 의심케 할 정도로 전시장 한편에 박혀 있어 한국기업들의 전시관을 찾기 위해서는 발품을 많이 팔아야 했다. 그리고 이같은 현상은 CES뿐만 아니다. 세계 최대의 컴퓨터축제인 컴덱스나 하노버박람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번 CES에 직접 참가한 우리 기업 관계자들이나 전시회를 찾은 참관객들은 이제 우리가 주변이 아닌 핵심의 자리에 올라섰음을 확연히 느꼈다고 전한다. 한국 기업들의 전시관 위치가 과거 마이크로소프트나 소니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만이 차지할 수 있었던 노른자위에 자리잡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시관 위치에서부터 전시관에 전시된 제품들, 그리고 한국 기업들의 전시관을 찾은 참관객들과 그들의 반응 모두에서 이제 우리도 세계 시장에서 떳떳하게 경쟁에 이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전시회가 한국의 힘을 전 세계에 알리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신호는 개막 전부터 충분히 예감됐다. 개막 전야제의 하이라이트였던 빌 게이츠의 기조연설에서 빌 게이츠는 한국 기업이 만든 제품들이 디지털 시대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뒤이어 아시아 기업인으로는 처음 개막 기조연설을 한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은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들은 새로운 체험의 세계, 시간과 공간에서의 제약을 벗어날 수 있도록 삼성전자의 제품이 인도할 것이라고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선언했다. 빌 게이츠가 소개한 임팩트라의 MPEG4 동영상플레이어는 CNN은 물론 BBC 등 세계 유수의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됐다.
전시장에서의 한국 열풍도 계속됐다. 차세대 디지털미디어로 평가받는 데이터플레이어 지원제품을 선보인 엠피맨닷컴, 전시회기간 동안 360만달러어치의 수출계약을 체결한 영상전화기전문업체인 씨앤에스테크놀러지, 컴팩전시장에서 인기를 모은 PC오디오를 전시한 뉴큐시스템, HD지상파방송수신기를 출품한 인테그라정보통신 등은 해외 바이어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중소벤처기업들이다.
국내 기업들이 출품한 DVD플레이어, MP3플레이어, 디지털녹음기 등 첨단 디지털제품들은 한국의 높은 기술수준을 과시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이전에 외국에 나가 있던 한국인이 태극기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느끼는 가슴벅차오름을 이번 전시회에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는 한 참관객의 이야기는 이제 우리가 마이너가 아닌 메이저임을 실감케 한다.
이처럼 뒤늦게 CES의 감동을 전하는 것은 최근 언론이나 일반 국민으로부터 우리 기업들이 도매 값으로 난타당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CES에서 나타난 우리 기업들의 모습은 불법이나 편법, 로비나 머니게임 등 지금 언론에 비춰진 일그러진 자화상과는 너무도 판이하다. 기업들의 사기가 저하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동안 기업들의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고 질타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자. 전 세계인들을 디지털 세상으로 인도하겠다는 한국의 기업들이 로비나 편법에 의해 만들어지고 키워졌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디지털 시대를 맞아 한국의 기업들은 이제 우리의 시대가 다가왔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만든 디지털TV와 디지털 가정용기기, MP3플레이어, 영상전화기 등이 전 세계인들에게 디지털세계로의 여행을 가능케 하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는 늦었지만 디지털 시대는 앞서가자는 우리 기업들의 희망이 꿈이 아닌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지금, 그들에게 채찍보다는 격려가 증오보다는 신뢰가 필요한 때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국의 힘을 과시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 다시 한번 온 국민의 성원을 보내자. 파이팅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