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한 벤처기업가의 몰락

◆원철린 국장석부장 crwon@etnews.co.kr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메디슨이 부도나기 전까지 벤처기업의 맏형 역할을 했던 이민화씨는 ‘21세기 벤처대국을 향하여’(공저)라는 책 첫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벤처행 막아라, 재벌 인센티브 전쟁’이라는 조간신문의 기사가 암담하게 보이던 미래를 희망으로 빛나게 해주었다고 스스로 답하고 있다. 벤처기업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한 그가 결국 벤처 기업 때문에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메디슨은 한때 연구개발의 효율성은 세계적인 업체보다 낫다라는 평가까지 받으면서 초음파진단기 하나로 세계 시장에서 선진업체들과 나란히 경쟁할 수 있었다. 한 예로 컬러 디지털 초음파장비를 개발하기 위해 메디슨이 1000만달러를 투입한 반면, GE와 도시바는 각각 1억달러를 투자했고 지멘스는 1억5000만달러를 썼다고 한다. 메디슨의 연구개발비가 5배 정도 싸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개발기간도 절반 정도밖에 들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그만큼 효율성이 높다고 해도 틀림없다. 선진업체보다 10배 정도의 연구개발 경쟁력을 가졌지만 결국 스스로 무너졌다. 벤처연방제의 건설을 꿈꿨던 경영자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벤처기업들이 연방제를 구성함으로써 전체가 하나 되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그의 경영논리는 코스닥의 열기가 뜨거웠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코스닥의 열기가 식으면서 이러한 경영논리가 사상누각이었음을 증명했다. 벤처연방제는 재벌과는 다르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벤처기업에 대한 문어발식 투자에 나섰던 그는 비난의 대상이 됐던 재벌들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다가 결국 몰락했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의 사탕발림식 벤처정책이 크게 한몫했다.

 경영자의 욕심과 정부의 정책이 맞물려 건실한 벤처기업에서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메디슨에서 우리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 메디슨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는 메디슨과 같은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벤처정신을 상실했다. 기술하나로 모험에 승부를 걸어야 했던 벤처기업들은 정부 지원에 손을 내밀기 시작했고, 정부관료들도 실적에 눈이 멀어 벤처기업들에 대한 지원정책을 내놓기 바빴다. 온실속에서 크기 시작한 벤처기업에서 벤처정신을 찾기가 쉽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다. 따라서 정부는 지원정책을 내놓기보다는 시장 기능에 맡겨 놓고 도전정신이 없는 껍데기 벤처기업들이 스스로 도태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다음으로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벤처투자가나 벤처경영자 모두 벤처기업이 탄탄한 반석위에 오르기전에 주식 투자로 일확천금을 챙기려는 허황된 꿈을 버려야 한다. 제대로 된 사업아이템도 없이 매출을 부풀려 코스닥에 상장해 부를 축적하려는 허위의식이 없어지지 않는 한 벤처게이트와 메디슨같은 일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처럼 퇴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코스닥 상장 정책은 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벤처기업은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점이다. 기본기도 갖추기 전에 대기업을 흉내내는 벤처기업들이 많다. 메디슨은 경쟁력 있는 고유의 기술개발에 전념하기보다는 오히려 문어발식 사냥에 신경을 더 쓰다가 몰락하게 됐다. 이제 벤처기업들은 다른데 눈을 돌리기보다는 본연의 사업 아이템으로 정면 승부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