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관시

 ◆<정복남 부국장겸 정보통신부장 bnjung@etnews.co.kr>

 중국인에게 이동전화를 선물할 때 전화번호에 3과 7을 나란히 놓는 것은 금물이다. 우리들은 3과 7을 행운의 숫자로 여기지만 중국인들에게 ‘7733’은 ‘처참하다’는 뜻이다. 반면 ‘오래간다’는 뜻인 9와 ‘돈을 많이 번다’는 뜻인 8은 ‘호아(좋아)’다. 간단한 것 같지만 이같은 상식도 모른 채 대 중국 비즈니스에 뛰어든다면 그것은 ‘만용’이다. 사람과의 신뢰관계가 비즈니스의 제1 순위로 간주되는 중국에서 이런 사소한 실수 한 번은 그간의 신뢰를 일시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

 중국이 격변하고 있다. 어느새 세계경제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덩샤오핑 때문이다. 중국인들에게 덩은 역사상 처음으로 ‘굶어죽지 않는 생활 환경’을 제공한 주역이다. 덩샤오핑은 ‘쥐만 잘 잡는다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가릴 필요가 없다’는 흑묘백묘론을 앞세워 중국에 실용주의를 도입했다. 경제개방의 근간이 된 흑묘백묘론은 거대한 내수시장, 높은 민간 저축률, 풍부한 인적자원과 맞물려 중국의 ‘힘’으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중국 경제개혁의 중심추인 통신산업이 가진 성장잠재력은 가늠키 어려울 정도다. “미래발전을 위한 지름길은 광대역기술을 포함한 통신기술이다. 중국은 현재 세계 역사상 전례없을 정도로 광대역통신을 포함한 첨단기술이 급변하고 있는 국가다.” 미국의 문명평론가인 앨빈 토플러의 분석이다. 그는 통신기술의 발달이 정치, 경제, 사회는 물론 개인의 삶도 바꾼다고 주장한 바 있다. 중국은 현재 정보통신 변화기의 정점을 넘어서고 있다.

 중국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이미 1억3000만명을 훌쩍 뛰어 넘었다. 1억2000만명 정도인 미국을 앞질러 세계 1위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보급률은 아직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 9.2%다. 오는 2005년이면 중국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4억900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벌써 이동전화 사용자 계층이 20, 30대 이상 엘리트 계층에서 10대로 확산되고 있다. 그야말로 이동통신 황금어장이다.

 중국 이동통신시장은 우리나라에게 남다르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데다 3000년 역사도 서로 얽히고 설켰다. 더구나 중국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 이동통신을 받아들임으로써 CDMA 상용화 종주국인 우리나라에 통신강국의 위상을 다지는 기회를 선사한 셈이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색이 그렇듯 외국기업들에 결코 녹록치가 않다. WTO 가입으로 이동전화단말기 완제품 관세장벽이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수입물량을 통제한다.

 반면 중국기업과의 합작은 적극 권장한다. 한 마디로 ‘중국에 들어와서 장사를 하되 중국기업에 기술도 가르치라’는 얘기다. 거대시장 진출 기회를 줬으니 그만큼의 기술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중국에서 사업기반을 다지기까지 10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인고의 세월이 CDMA방식 이동전화단말기 생산비준 획득이라는 결실을 낳았다. 이로써 두 회사는 처녀지나 마찬가지인 중국 CDMA 이동통신 시장에서 외국기업보다 한 발 앞선 행보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중국 이동통신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열쇠는 무엇일까. 머뭇거릴 필요없이 ‘현지화’이고 현지화의 성공지표는 ‘관시(인간관계)’다. 중국에서 관시는 신뢰로 통한다. 그런데 신뢰를 얻기까지 1, 2년은 아무 것도 아니고 5년 이상,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신뢰를 얻는다면 일사천리다. 어떤 기업인은 아무리 공략해도 꿈적도 하지 않던 현지 판매상들이 권하는 ‘폭탄주 20’ 잔을 같이 들고 난 이후에는 너무도 쉽게 비즈니스 계약을 ‘OK’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자신과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관시’를 맺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방증이다.

 한가지 반가운 것은 최근의 한류 열풍이다. 중국에서의 한류 바람은 서구문화를 희석시켜 한국화한 것이 중국에서 쉽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평이다. 역으로 이는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만큼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와 중국인의 공감대가 가깝다는 설명이고 이는 중국인의 시각과 관습에 충실한 성공적인 관시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시장을 공략하라. 이는 우리 기업에 내려진 특명이다. 중국시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삼국지의 관우를 숭상하는 중국인들인 만큼 장사요령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훌륭한 관시를 이루었다면 중국진출은 거의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