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하이닉스 협상을 지켜보며

 ◆모인 산업기술부장 inmo@etnews.co.kr

경기회복 기미가 뚜렷하다. 산업활동도 활발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때문인지 기업들의 체감경기지수는 크게 호전되고 있다.

 수출이 다소 삐걱대고는 있으나 주력 제품인 반도체의 가격은 속등 추세를 보이고 있다. 128Mb SD램 기준으로 보면 작년말에 비해 500%나 올랐다. 일각에서는 세계 경기회복과 업무용 PC 수요 증가에 힘입어 더 오를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경기 회생과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면서 하이닉스반도체의 처리 여부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여기에다 하이닉스가 엊그제 1100억원의 영업이익과 5500억원의 경상수지를 기록했다고 발표하자 매각 얘기는 온데간데없이 수면 밑으로 꼬리를 감추는 형국이다. 이 회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최근의 반도체 가격이면 충분히 생존가능하다며 독자 생존론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의 논리를 들여다보면 간단하다. 128Mb SD램의 가격대를 최악인 3.20달러로 가정하더라도 연간 5조원의 매출이 가능하고 부채 상환과 설비투자 자금으로 3조원을 계상하게 되면 작년 이월 현금과 자구 노력으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부 분석가들도 그의 이같은 논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4달러 이상만 유지하게 되면 채권단의 추가 지원없이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하이닉스를 서둘러 매각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그동안 D램가의 상승을 주된 이유로 꼽아왔다. 업계 일각에서도 이 시점에서 하이닉스의 매각을 서두를 필요가 있느냐며 도리어 반문하기까지 한다. 최근에 만난 채권단의 한 관계자도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현재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최근의 반도체 시황은 하이닉스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온 마이크론의 지난 6일의 태도변화는 묘한 감흥까지 안겨다준다. 크렘린궁처럼 옴짝달싹도 하지 않을 것처럼 입을 굳게 닫아온 마이크론이 하이닉스의 독자 생존론이 크게 불거지자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재협상에 응해달라고 달려들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일단 채권단이 제시한 수정협상안이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협상결렬에 따른 가격하락과 이에 따른 마이크론의 경영 봉착을 우려한 ‘우파’들이 서둘러 재협상을 채찍질했다는 설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조기협상 타결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6조5000억원에 이르는 부채와 사실상 부채로 볼 수밖에 없는 2조9000억원에 달하는 은행권 전환사채(CB) 등 무려 11조원에 이르는 거대한 빚을 떠안고 있는 하이닉스의 경우 매각협상을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영업흑자 전환으로 독자생존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재무구조상 여전히 부실기업이다.

 마이크론도 여유가 있는 게 아니다.

 위태한 D램 가격만을 쳐다보고 있다간 자칫 경영부실로 이어져 존폐 여부를 저울질해야 할지도 모를 운명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협상 타결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다.

 마이크론은 모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채권단으로부터 ‘정답’을 받아놓은 마이크론이 예수의 행적처럼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협상을 미뤄왔다면 채권단의 제값 받기를 위한 잇단 움직임은 상당히 옹색해질 수밖에 없다.

 소리를 위해 대세를 거슬러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어렵게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서두르지도, 미루지도 않는 절묘한 타이밍의 경제학을 또다시 생각케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