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벤처기업 평가

 ◆박주용 디지털경제부장 jypark@etnews.co.kr

 

 “벤처 성공률 10%, 대단한 성공이다.”

 최근 벤처 정책을 담당하는 중기청장이 지역 벤처기업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벤처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 5%’에 비한다면 2배가 넘는 수치다.

 중기청장의 성공한 벤처 비율 10%는 등록 예정기업을 포함한 코스닥시장 등록 벤처기업 수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물론 이 10%에 허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코스닥시장에 진출한다고 성공한 기업으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중기청장도 이 정도는 감안했으리라고 본다. 허수가 있다고 해도 코스닥시장에 진출한 기업이 전체 벤처기업의 10%에 달한다면 중기청장의 말대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대단한 성공이라는 표현에도 크게 무리가 없다.

 그러면 이같은 국내 벤처산업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벤처기업의 성공을 결정짓는 요인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즈니스모델이나 기술은 기본이다. 마케팅 능력도 필요하며 CEO의 자질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같은 요소들은 벤처기업 지정과정에서 어느 정도 걸러진 것들이다. 성공한 벤처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기업을 이끌어갈 자금, 바로 풍부했던 돈줄이다.

 벤처 열풍이 불어닥친 98년부터 2000년 사이에는 인터넷이나 닷컴과 함께 정부가 지정하지 않은 신생기업이라도 벤처라는 이름만 내걸면 돈이 몰려들었다. 10억원을 모집하는 인터넷 공모가 2초 이내에 마감된 전설같은 이야기도 당시에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기술과 독창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건전한 벤처기업인들에게는 이미 이때 성공 기반이 마련됐다.

 그러나 벤처의 거품이 걷힌 지난해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일확천금의 환상이 깨어지면서 벤처기업들의 현금 유동성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알량한 사업 아이디어를 내세웠거나 방만한 경영을 한 벤처기업들에게는 도태라는 불명예가 주어졌다. 물론 건전한 벤처기업들까지 덩달아 자금압박을 받게 됐다.

 이같은 현상은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벤처 비리로 더욱 심화되어져 갔으며 결국 벤처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평가 작업을 불러들였다. 평가에는 벤처정책을 주관하는 중소기업청을 비롯,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이 팔을 걷어붙였으며 이에 호응하듯 벤처기업협회도 자정방안 모색에 나섰다. 기존 벤처기업은 물론 신생기업에 이르는 대부분의 벤처들이 평가대상이다.

 문제가 있는 벤처기업들을 걸러내고 건실한 벤처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하려는 정부와 단체들의 ‘옥석 가리기’는 사회정의의 실현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면서 전체 벤처기업들의 이미지를 나빠지게 하고 있는 일부 벤처에 대한 제재는 보다 엄정하게 실시돼야 한다.

 그러나 본격화되고 있는 일련의 벤처기업 평가를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한 가지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 최근의 옥석 가리기의 기준이 무엇이며 평가작업이 규제로 작용해 벤처기업들의 활동이나 생성을 위축시키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평가가 자칫 기업경영의 원천인 자금의 흐름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벤처기업의 성격상 벤처정책은 모험적인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실패할 수 있는 95%를 인정하고 나머지 5%의 성공으로 국가 경제의 발전을 얻어내는 것이 정책의 근간이 돼야 한다. 또 악의적인 기업은 퇴출돼야 하지만 기술과 아이디어가 미흡해 실패할 수도 있는 건전한 다수는 인위적인 퇴출보다 시장 논리에 맡겨둬야 한다.

 벤처기업의 특성은 얽매이지 않는 사고와 기술에 있다. 벤처의 성공률이나 평가도 중요하지만 이들 기업이 얼마나 자유스럽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느냐가 보다 더 중요한 과제다. 시장논리에 의해 실패한 벤처들이 모두 죄인 취급을 받지 않을 때 우리 벤처산업의 미래가 밝을 것이다.